중세 도시는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인구가 급감하며 쇠퇴기를 맞았고, 11세기 이후 상업적 르네상스를 통해 다시 번영을 누렸으며, 이후 흑사병으로 또다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중세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
중세는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시작되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끝나는, 약 천 년에 달하는 역사 시대입니다. 이 시기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봉건제가 확립되었고, 가톨릭 교회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도시의 쇠퇴
중세는 인류 역사에서 매우 긴 시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중세 도시'라는 개념은 다루는 시기에 따라 그 모습이 크게 달라집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중세가 시작되면서 서유럽의 도시들은 급속한 쇠퇴기를 겪었습니다. 도심에 살던 사람들이 농촌 지역으로 대거 이주한 것입니다.
도시가 텅 비게 된 원인은 로마 제국의 붕괴 자체에 있었습니다. 제국의 주요 생산지역들이 대이동 시기에 게르만족의 공격을 받으면서 생산량이 급감했고, 이는 도시의 물자 공급 차질과 기근으로 이어졌습니다. 더욱이 대도시들은 전리품을 노리는 게르만족에게 매력적인 표적이 되었습니다.
결국 도시 인구는 식량과 물자 생산지에 가까운 시골로 이주하여 약탈과 폭력을 피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중세 장원(영지) 형성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두드러진 특징은 상업과 화폐 유통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극소수 남은 교역조차 대개 인접한 영지들 사이에서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도시의 부흥

독일 함부르크 중세 성문 중 하나
도시의 부흥은 11세기부터 농업에 도입된 기술 혁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경작지의 윤작(삼포제)과 개간(토지 개량 작업) 등의 혁신은 경작 면적을 넓히는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고 인구도 증가했습니다.
생산 증가로 잉여 농산물이 생기자 상업이 활발해졌습니다. 영주의 예속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주 물결 속에 도시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만 중세 세계는 여전히 본질적으로 농본주의적이었습니다. 역사학자 프랑코 힐라리우 주니어(Franco Hilário Júnior)에 따르면, 13세기에 도시에 거주한 중세 인구는 약 20%에 불과했다고 합니다|1|.
중세 도시의 재건은 동시에 권력 구조의 전환도 가져왔습니다. 권력을 쥐고 있던 주교와 귀족의 일부는 점차 신흥 부르주아 계급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부르주아는 상업의 성장과 도시(부르크) 정착 과정에서 형성된 계층이었습니다.
13세기, 유럽 대도시들의 규모
13세기에는 서유럽 각지에 대도시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자크 르 고프(Jacques Le Goff)는 당시 중세 도시의 규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서유럽의 중요한 도시는 인구 1만~2만 명 수준이었다. 팔레르모와 바르셀로나는 약 5만 명으로 남들보다 앞섰다. 런던, 겐트, 제노바, 그리고 무슬림 영토의 코르도바는 약 6만 명이었다. 볼로냐는 분명 6만~7만 명, 밀라노는 7만 5천 명이었다. 피렌체와 베네치아만이 10만 명에 도달했거나 그것을 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단연 최대 도시는 파리로, 1300년경 분명 20만 명의 인구를 담고 있었다 |2|.
14세기의 위기와 흑사병
그러나 도시의 부흥과 인구 증가는 이른바 14세기의 위기로 인해 크게 좌절됩니다. 흑사병이라 불린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인구의 상당 부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이 병은 쥐에 기생하는 벼룩을 통해 전파되었으며, 서유럽 인구의 최소 3분의 1을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잉글랜드의 경우 사망률이 인구의 70%에 달하기도 했습니다|3|.
|1| FRANCO JUNIOR, Hilário. A Idade Média, nascimento do Ocidente. 상파울루: Brasiliense, 2006, p.23.
|2| LE GOFF, Jacques. 유럽의 중세적 뿌리. 페트로폴리스: Vozes, 2011, p.147.
|3| 위의 책, p.228.
글: 다니엘 네베스(Daniel Neves)
역사학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