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목재의 징표 아래' 살다
중세 시대에 목재는 놀랄 만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는 이 시기가 '목재의 징표 아래' 살아간 시대라고 단언할 정도였습니다.
5세기부터 11세기까지 유럽 대륙에서 인간의 활동을 아우르는 전기 중세(High Middle Ages) 동안, 목재는 중세 사람들의 물질 생산 전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숲에서 얻은 만능 자원
목재는 주로 주거지와 농경지를 둘러싼 숲에서 채취되었으며, 그 용도 역시 매우 폭넓었습니다. 당시 숲은 미개간지(uncultivated)로 불렸는데, 이는 경작 등 인간의 토지 개발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은 공간이라는 뜻으로, 수렵과 식물·광물 채취가 행해지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중세 전문 연구자들의 저술에 나타난 목재 사용례를 종합한 포르투갈의 역사가 주앙 베르나르두(João Bernardo)는 이 시기 목재의 용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연료로서의 목재
목재는 금속 제련, 제염, 유리, 도자기, 그리고 석회와 석고 생산 같은 제조업 분야의 연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가정에서는 취사, 난방, 조명을 위해 태워졌으며, 연소 후 남은 재는 비누와 세제 생산, 염색, 유리 제조, 비료의 원료로까지 재활용되었습니다.
건축과 교통 수단
건축 분야에서도 목재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요새와 방책(울타리 성벽), 다리, 배를 비롯한 각종 운송 수단이 목재로 지어지거나 만들어졌습니다.
농기구와 일상용품
쟁기를 비롯한 수많은 농업 도구 역시 목재로 제작되었습니다. 음식을 담는 그릇부터 각종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쓰이는 가구와 도구의 원료도 목재였고, 무기류조차 상당 부분 목재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단일 소재에 의존한 유일한 기술 체계'
마르크 블로크는 중세인들이 이 원료에 얼마나 깊이 의존했는지를 두고 중세가 '목재의 징표 아래' 살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건축 미학의 영역에서도 당시 사람들은 목조 건축이 석조 건축보다 더 아름답다고 여겼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러한 의존도 때문에 주앙 베르나르두는 목재가 중세 생산 활동의 중심에 있었다며, "다른 어떤 기술 체계도 단일한 재료에 이토록 완전하게 의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한편 베르나르두는 석탄과 철의 사용을 산업 문명이 초래한 환경 불균형의 근원으로 비판하는 생태주의적 논의에 대해 반론을 제기합니다. 초기 자본주의가 채택한 새로운 재료들은 환경 파괴의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 삼림의 목재 고갈에 대한 대응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새로운 원료와 기술의 등장은 삼림 벌채를 줄이는 데 기여했고, 목재라는 단일 원료에 대한 중세 기술 체계의 의존 역시 점차 약화되어 갔습니다.
[참고문헌] BERNARDO, João. Poder e Dinheiro: Do Poder Pessoal ao Estado Impessoal no Regime Senorial, séculos V-XV, Parte I. Porto: Afrontamento, 1995. p. 3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