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 왕국의 형성
서로마 제국의 쇠퇴는 야만인들의 침입으로 한층 가속화되었습니다. '야만인(barbarian)'은 원래 로마인들이 제국 국경 밖에서 살며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는 민족들을 지칭하던 명칭입니다. 고대 말기 유럽의 운명을 바꾼 주요 야만족 집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게르만족(Germans)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민족으로 서유럽 일대에 거주했습니다. 대표적인 게르만계 부족으로는 서고트족, 동고트족, 반달족, 브리튼족, 색슨족, 프랑크족 등이 있습니다.
슬라브족(Slavs)
동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기원한 민족으로, 러시아인, 체코인, 폴란드인, 세르비아인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타타르-몽골족(Tatar-Mongols)
아시아 계통의 민족으로, 훈족, 튀르크족, 불가르족 등의 부족이 포함됩니다.
게르만족: 봉건 유럽의 초석
여러 야만족 가운데 게르만족은 봉건제 유럽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민족이었습니다.
게르만족의 정치 조직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평시에는 성년에 이른 부족 남성들로 구성된 전사 회의가 부족을 다스렸습니다. 이 회의에는 입법 권한이 없었으며, 그 기능은 관습의 해석에 국한되었습니다. 또한 전쟁과 평화의 문제, 부족의 이주 여부 등을 결정했습니다.
전시에는 '코미타투스(comitatus)'라 불리는 제도가 작동했습니다. 이는 군사 지도자를 중심으로 전사들이 결집하여 절대적인 복종을 맹세하는 조직으로, 지도자는 선출되었으며 '헤르초크(Herzog)'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경제적으로 게르만족은 초보적인 농업, 수렵, 어로에 의존해 생활했습니다. 농경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지력이 고갈된 땅을 재활용할 줄 몰랐기 때문에 반정착 생활을 했습니다. 토지 소유는 공동체적이었으며, 노동의 상당 부분은 여성이 담당했습니다. 남성들은 수렵이나 전투가 없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술 마시거나 잠자는데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사회는 가부장제였으며, 결혼은 일부제였고 간음은 엄중하게 처벌되었습니다. 일부 부족에서는 과부의 재혼조차 금지되었습니다. 법은 성문법이 아닌 관습법, 즉 오랜 관습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종교는 다신교로 자연의 힘을 숭배했습니다. 주요 신으로는 전사의 수호신 오딘(Odin), 천둥의 신 토르(Thor), 사랑의 여신 프레이야(Freya)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투에서 죽은 전사만이 일종의 낙원인 발할라(Valhalla)에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오딘의 사자인 발키리(Valkyrie)들은 전장을 누비며 전사자들을 실어 나랐다고 합니다. 반면 늙거나 병으로 죽은 사람들은 어둠과 혹한만이 있는 저승 헬(Hel)의 세계로 간다고 여겨졌습니다.
야만족 왕국의 성립 배경
1세기부터 제국의 팽창과 함께 로마인들은 게르만족을 비롯한 야만족들과 비교적 평화로운 접촉을 유지했습니다. 많은 야만족이 로마 제국 내부로 이주했고, 상당수는 용병으로 군대에 편입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5세기에 들어서면서 게르만족은 호전적인 훈족(Huns)의 압박을 받기 시작합니다. 아시아에서 기원한 훈족이 유럽으로 진격하며 게르만족을 공격하자, 게르만족은 도피하듯 로마 제국으로 밀려들었습니다. 이미 내분과 위기로 약해져 있던 제국은 이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졌고, 고대 로마의 자리에는 여러 야만족 왕국이 들어섰습니다.
“…그들(훈족)에게는 불이나 익힌 음식이 필요 없다. 그들은 나물 뿌리와 각종 고기를 먹고 사는데, 말 위에 올려 잠시 데운 반쯤 익힌 고기를 먹는다. 그들에게는 집이 없으며, 심지어 갈대로 덮은 움막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헝겊이나 들쥐 가죽을 걸친다… 아무도 땅을 경작하지 않으며 쟁기에 손대는 이조차 없다. 정착지도, 집도 없이 그들은 사방을 떠돌며 마치 수레와 함께 도망 다니는 듯 보인다. 이성 없는 짐승처럼 그들은 선과 악을 구분할 줄 모르며, 종교도 미신도 없다. 다만 황금에 대한 열망만은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다.”
유럽의 주요 야만족 왕국
서고트 왕국: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가장 오래되고 광대한 왕국이었습니다. 서고트족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요충지를 장악하여 유럽 대륙과 도서 지역 간의 상업적 패권을 누렸습니다.
동고트 왕국: 이탈리아 반도에 자리잡았습니다. 동고트족은 로마의 예술·문화 유산 보존에 힘썼으며, 여러 기념물을 복원하여 로마의 기억을 이어갔습니다. 제국의 정치·행정 조직인 원로원과 로마 관료제는 유지하고, 군사는 고트족이 담당하는 이원적 통치 구조를 갖추었습니다.
반달 왕국: 반달족은 유럽을 가로질러 북아프리카에 정착했습니다. 이 왕국에서는 기독교인 박해가 있었고, 그 결과 대규모 이주가 일어나 노동력 부족과 생산량 감소를 초래했습니다.
수에비 왕국: 이베리아 반도 서북부에서 성립했으며, 수에비족은 어업과 농업에 의존해 생활했습니다. 6세기 말, 이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지배하게 된 서고트 왕국에 흡수되었습니다.
부르군트 왕국: 부르군트족은 스칸디나비아에서 이주하여 론 강 유역에서 아비뇽까지를 지배하며 왕국을 세웠습니다. 6세기 중반 프랑크족에게 정복당했습니다.
앵글로색슨 왕국: 571년 색슨족이 브리튼족을 격파하고 브리튼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서 성립되었습니다.
야만화와 로마화의 공존
침입과 야만족 왕국 형성의 과정에서 로마 주민들의 '야만화'와 야만족의 '로마화'가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경제 분야에서 유럽은 상업보다 농업에 중점을 두는 게르만식 경제 관행을 받아들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야만족들은 지배층이 되었음에도 로마 문화의 잔재를 파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러 방면에서 이를 수용하고 되살렸습니다. 정치 조직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원래 부족 중심의 원시적 조직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군주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고, 로마 행정의 여러 제도와 규칙도 받아들였습니다. 많은 야만족이 라틴어를 공용어로 채택했으며, 새로운 왕국들은 점차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로마 주교를 정점으로 하는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인정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통합이 깨진 뒤, 가톨릭 교회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보편적인 제도로 남았습니다. 이러한 지위는 교회가 중세 유럽 전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