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정복은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이끈 원정대가 황제 아타왈파(Atahualpa)를 포획하고 처형하면서 완성된 사건입니다. 약 200명 규모의 이 원정대는 내전으로 분열된 잉카 제국의 상황을 교묘히 이용해 이 거대 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당시 잉카인들은 오늘날의 콜롬비아, 칠레 북부, 아르헨티나 북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잉카 제국이란?
잉카 제국은 오늘날 페루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한 거대한 원주민 제국입니다. 이 웅대한 제국은 수차례의 전쟁과 주변 원주민 부족에 대한 정복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역사가 마리안 마른-로(Marianne Mahn-Lot)에 따르면 영토는 약 4천 킬로미터에 달했습니다|1|.
잉카인들은 자신들의 제국을 타우안틴수유(Tahuantinsuyu)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공용어인 케추아어로 "네 방위의 제국"이라는 의미입니다. 잉카 제국은 사파 잉카(Sapa Inca)라 불리는 황제가 다스렸으며, 잉카의 역사 전승에 따르면 초대 황제는 파차쿠티(Pachacuti)로 1438년경 즉위했습니다. 제국의 수도는 쿠스코(Cuzco)였습니다.
16세기 스페인인들이 잉카 지역에 도착했을 때, 제국은 마지막 황제 우아이나 카파크(Huayna Capac)의 두 아들 사이에 벌어진 내전으로 분열된 상태였습니다. 카파크의 아들들인 아타왈파와 우아스카르(Huáscar)는 잉카 제국의 왕위 계승을 두고 격렬히 다투고 있었습니다.
아타왈파는 제국의 세 장군인 찰쿠치마(Chalcuchima), 퀴즈(Quiz), 루미냐우이(Rumiñahui)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키토(Quito)를 중심으로 한 제국 북부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우아스카르는 수도 쿠스코를 통치하며 남부 지역에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의 갈등은 결국 우아스카르가 키토의 아타왈파를 공격하는 국면으로 번졌지만, 우아스카르는 오히려 패배하여 포로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도착
피사로의 원정대는 잉카 제국이 가장 취약했던 시점, 즉 우아스카르와 아타왈파 간의 내전으로 제국이 크게 약화되었을 때 정확히 도착했습니다. 이 원정대는 1531년 초 '카스티야 델 오로(Castilla del Oro)'라 불리는 지역, 즉 오늘날의 파나마에서 출발해 잉카 영토 진입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1513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스페인 평민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카스티야 델 오로 지역에서 스페인 왕실로부터 영지를 하사받았고, 그곳에서 카리브 원주민들의 위협에 대응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527년 피사로는 에콰도르 해안을 탐사하는 원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비루(Biru)'라 불리는 지역에 거대하고 부유한 제국이 존재한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피사로가 이끄는 잉카 정복 원정은 실제로 1531년, 왕실의 공식 허가를 받은 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피사로는 "배 3척, 병사 200명, 말 27마리"|2|를 이끌고 파나마를 출발했습니다. 잉카 제국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통역관들을 통해 우아스카르와 아타왈파 사이의 분쟁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피사로는 잉카 내전의 승자인 아타왈파를 직접 만나기 위해 나섰습니다. 아타왈파와 그의 군대는 카하마르카(Cajamarca)라는 지역에 주둔 중이었으며, 곧 쿠스코로 진군할 계획이었습니다. 스페인인들은 잉카 지도자로부터 평화롭게 맞이되었지만, 기록에 따르면 양측 사이에 의견 충돌이 발생한 뒤 스페인인들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스페인인과 잉카인 사이의 갈등은 원주민들이 가톨릭 신앙으로의 개종을 거부하면서 폭발했습니다. 전투 과정에서 아타왈파는 포로로 잡혔고, 그는 우아스카르가 스페인인들과 동맹을 맺는 것을 막기 위해 형을 죽이라는 밀명을 보냈습니다. 한편 아타왈파는 자신의 석방을 조건으로 금으로 가득 찬 방 하나를 스페인인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잉카의 지도자는 약속을 성실히 이행해 막대한 양의 귀금속을 스페인인들에게 넘겼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인들은 약속을 어기고 아타왈파를 석방하지 않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명령에 따라 그를 처형해 버렸습니다. 황제의 죽음과 함께 잉카 제국은 급격히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스페인인들은 원주민 출신 동맹인 만코 카파크(Manco Capac)를 새 황제로 세웠습니다. 이후 그들은 잉카의 두 대도시인 쿠스코와 키토를 차례로 정복했습니다. 파나마와의 연락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피사로는 리마(Lima) 시를 건설했으며, 1541년 암살당할 때까지 그 지역에 머물렀습니다.
참고 자료
|1| MAHN-LOT, Marianne. The Conquest of Spanish America. Campinas: Papirus, 1990, p. 50.
|2| 상동(同上), p.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