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스타덴, 브라질을 두 번 찾은 독일 용병
한스 스타덴(Hans Staden)은 1547년부터 1549년 사이 용병 포수로서 브라질을 두 차례 여행한 독일인입니다. 그가 남긴 기록은 특히 원주민들 사이에서 보낸 아홉 달의 포로 생활을 생생하게 전해 줍니다.
한스 스타덴은 독일 홈베르크(Homberg) 출신 용병으로, 1548년과 1549년 두 차례에 걸쳐 브라질을 방문했습니다. 두 번째 항해는 투피남바(Tupinambá) 인디언들에게 포로로 잡혀 9개월을 보낸 경험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포로 생활 동안 스타덴은 원주민들의 식인 의식(안트로포파지 의식)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부를 찾아 브라질에 건너온 스타덴은 독일로 돌아온 뒤 1557년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브라질 두 번의 항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제는 훨씬 긴 다음과 같은 제목이었습니다.
"헤센 지방 호름베르크 출신 한스 스타덴이 최근 2년간 직접 경험하여 알게 된, 예수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 헤센 땅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아메리카 신대륙에 위치한, 나체이고 잔인한 식인종들의 땅에 대한 진실한 이야기와 묘사"
한스 스타덴의 항해가 이루어진 시대적 배경
한스 스타덴의 항해는 1548년부터 1549년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브라질의 포르투갈 식민지화가 아직 미미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파우브라질(브라질나무) 채벌이 주요 경제 활동이었고, 포르투갈은 이 무렵 총독정부(General Government)를 설립하는 중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의 거점은 해안가의 작은 마을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기록들은 원주민들과의 첫 접촉과 일부 부족들의 적대감을 보여 줍니다. 다만 유럽인들이 남긴 원주민에 대한 기록은 종교적 도덕관과 자기중심주의적(에트노센트리즘) 시각이 짙게 배어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첫 번째 항해 (1548년)
첫 번째 항해는 1548년 상반기, 상업 목적으로 브라질에 오는 포르투갈 선박을 타고 이루어졌습니다. 단, 이 배는 프랑스 선박을 발견하면 공격하라는 명령도 함께 받고 있었습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따라 아메리카 대륙의 일부가 포르투갈 영토로 정해졌기 때문에, 포르투갈 영역에 들어온 타국 선박은 침입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스타덴은 이 원정에서 포수 역할을 맡았습니다.
첫 번째 항해에서 스타덴은 페르남부쿠(Pernambuco)에 머물렀지만, 프랑스 선박과의 전투에서 배가 손상되어 포르투갈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1548년 10월 리스본에 도착했습니다.
두 번째 항해와 포로 생활 (1549~1555년)
두 번째 항해는 부활절 직후인 1549년, 세비야에서 출항한 스페인 선박을 타고 시작되었습니다. 목적은 리오데라플라타 강 어귀를 거쳐 페루 땅에 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타덴의 기록에 따르면,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나 산타카타리나(Santa Catarina) 섬에 강제 상륙하게 됩니다. 그들은 폭풍우로 행방불명된 다른 두 척의 배를 섬에서 기다렸습니다. 두 번째 배가 도착한 후(세 번째 배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항해 재개 준비를 하던 중 또다시 불행이 닥쳤는데, 바로 주력선이 침몰한 것입니다. 스타덴은 침몰의 정확한 경위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산타카타리나 섬에서 2년을 보낸 뒤, 스타덴 일행은 남은 배를 타고 상비센투(São Vicente)로 떠났지만 그 배마저 암초에 부딪혀 상비센투 연안에서 난파했습니다. 그곳에서 스타덴은 포르투갈인들의 초청을 받아 베티오가(Bertioga) 요새 방어를 담당하는 포수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스타덴은 베티오가 요새에서 2년간 포수로 복무했습니다. 그곳에서 포르투갈인들은 투피남바족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냥을 위해 울창한 숲에 들어갔다가 스타덴은 투피남바 인디언들에게 붙잡히고 만데, 이는 포르투갈 진영에 있었던 탓에 투피남바족의 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투피남바족은 일반적으로 포로를 식인 의식에서 죽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에 따르면 적을 먹음으로써 그가 지닌 자질과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스타덴은 9개월 동안 포로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폭력을 당했고, 식인 의식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끊임없는 죽음의 위협 속에 놓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부족 간 전쟁의 실태와 투피남바 문화의 수많은 세부 사항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9개월 후, 한스 스타덴은 프랑스인들에 의해 석방되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원주민들과 협상을 벌여 그의 석방을 성사시켰습니다. 배 카트린 드 바트빌(Catherine de Vatteville)의 선장 윌리암 드 모네(William de Moner)가 석방 협상을 담당했습니다. 스타덴은 1555년 2월 20일 프랑스 옹플뢰르(Honfleur) 항에 도착하며 유럽으로 돌아왔습니다.
한스 스타덴의 기록 속 주요 장면
산타카타리나 섬에서 보낸 2년에 대해
"우리는 황야에서 2년을 지내며 수많은 위험을 견뎌냈다. 우리는 몹시 굶주려 도마뱀, 들쥐 등 잡을 수 있는 낯선 동물들과 물속 돌에 붙어 있는 껍질 달린 생물, 그리고 기타 기묘한 음식들을 먹어야 했다. 처음에는 원주민들이 많은 음식을 가져다 주었지만, 우리에게서 값진 물건들을 얻어 낸 뒤에는 대부분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다." |1|
투피남바족에게 붙잡혔을 때
"숲길을 걷던 나는 길 양쪽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야인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말이다. 사내들이 나를 향해 다가왔고, 그들이 야인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나를 에워싸고 활과 화살을 겨누어 쏘았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 제 영혼을 구원해 주소서!'라고 외쳤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들은 나를 때리고 바닥에 쓰러뜨린 뒤 총과 창으로 찔렀다. 다행히 —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 한쪽 다리에만 다쳤지만, 그들은 내 옷을 벗겨 갔다. 하나는 외투를, 하나는 모자를, 또 하나는 셔츠를 가져 갔다." |2|
원주민들로부터 받은 위협
"카이사라(마을 울타리) 안에서 여인들이 나에게 달려들어 주먹으로 때리고 수염을 뜯으며 그들의 언어로 외쳤다. 'Xe nama poepika aé!', 즉 '이 대갚음으로 네 친구들이 죽인 사람의 원수를 갚으마!' 그런 다음 그들은 나를 움막으로 데려가 그물침대에 눕혔고, 여인들이 다시 몰려와 나를 때리고 머리카락을 뽑으며 잡아먹을 작정이라는 듯 위협적으로 굴었다." |3|
한스 스타덴이 그린 원주민의 모습
"그들은 남녀 모두 몸과 체격이 이곳 사람들 못지않게 아름다운 민족이다. 다만 태양에 그을렸을 뿐이다. 그들은 노약자를 막론하고 모두 알몸으로 지내며, 음부 부위에도 아무것도 두르지 않는다." |4|
|1| STADEN, Hans. 『브라질 두 번의 항해: 브라질에 관한 최초의 기록들』. Porto Alegre: L&PM, 2011, p.51-52.
|2| 상동, p.61-62.
|3| 상동, p.69.
|4| 상동, p.140.
글: 다니엘 네베스(Daniel Neves)
역사학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