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베트남 전쟁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화두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1964~1975)에 개입하게 된 명분 때문입니다. 여러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명분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던 미국의 근거와 거의 다름없이 빈약했다고 평가됩니다.
전쟁의 도화선: 통킹만 사건
베트남의 경우 모든 것은 1964년 7월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함선 USS 매독스(USS Maddox)와 USS C. 터니 조이(USS C. Turney Joy)가 통킹만에서 순항 중 북베트남 공산군의 공격을 받았다는 사건이 발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공격은 미국 정부가 해당 지역에 직접 개입하기 위해 만들어낸 구실에 불과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1962년부터 미국은 남베트남의 친자본주의 독재 정권에 무기와 자금, 군사 고문관을 파견하며 북부 공산 세력에 맞서도록 지원해 왔습니다. 즉, 통킹만 사건 이전부터 미국의 개입은 이미 진행 중이었던 셈입니다.
군사 강국의 좌절: 베트콩의 저항
현지에 진주한 미군은 오늘날 이라크에서와 마찬가지로, 막강한 군사력만으로는 상대의 저항을 꺾을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베트콩은 복잡하게 얽힌 지하 은신처와 터널망을 활용해 부비트랩과 매복 공격으로 게릴라전을 펼치며 미군을 괴롭혔습니다.
더욱 결정적인 요인은 언론이었습니다. 미군 병사들과 베트남 민간인의 죽음이 TV를 통해 생생히 전달되면서 백악관에 대한 국민 여론은 급속히 악화되었고, 닉슨 행정부 시기에는 수천 명의 반전 시위대가 백악관 앞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재정 부담과 인명 손실을 이유로 전쟁의 종결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이라크 전쟁과의 놀라운 유사성
이러한 양상은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겪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개입의 명분이 불투명했고, 정규전 이후의 소모전과 게릴라식 저항에 시달렸으며, 전쟁의 참상이 언론을 통해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국내 여론이 악화된 점 등이 그 예입니다.
두 전쟁의 가장 큰 차이: 사망자 수
다만 두 전쟁을 가르는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사망자의 규모입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약 50만 명이 목숨을 잃은 반면, 이라크 전쟁에서의 사망자는 공개된 데이터 기준 약 13만 2천 명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두 전쟁은 '압도적 군사력이 항상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