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의 종언, 브라질 재민주화의 시작
브라질은 1985년을 기점으로 재민주화 과정에 본격적으로 들어섰습니다. 오랜 기간 권력을 장악해 온 군부 통치가 막을 내리고, 탄크레두 네베스(Tancredo Neves)가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민간 정부 수립의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직선제 개헌안 부결 이후의 정치적 재편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자는 개헌안이 부결된 뒤, 모든 정당은 누구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지 두고 활발한 움직임을 벌였습니다. 거대한 여론의 지지를 받던 직선제 요구가 좌절되면서, 정치권은 현실적인 대안 후보 단일화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PDS의 분열과 자유전선당(PFL)의 창당
여당인 민주사회당(PDS)은 파울루 말루프(Paulo Maluf)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습니다. 그러나 마르코스 마시엘(Marcos Maciel), 조제 사르니(José Sarney), 아우렐리아누 샤베스(Aureliano Chaves) 등 당내 주요 인사들은 이번 공천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결국 이 반발 세력은 당을 떠나 새로운 정당인 자유전선당(PFL, Partido da Frente Liberal)을 창당하는 돌파구를 선택했습니다.
민주동맹의 결성과 후보 단일화
자유전선당(PFL)은 최대 야당인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에 대한 정치적 지원을 선언하며 이른바 '민주동맹(Aliança Democrática)'을 구성했습니다. PMDB는 이미 탄크레두 네베스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상태였으며, 이 지지 관계를 바탕으로 한 협상 끝에 조제 사르니가 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습니다.
반면 노동자당(PT)과 공산당 등 이른바 좌파 성향의 정당들은 이 연합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탄크레두 네베스의 당선과 뜻밖의 서거
1985년 1월 15일,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선거인단 투표에서 탄크레두 네베스가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브라질 군사독재의 긴 장막이 드디어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취임식을 하루 앞둔 3월 14일, 탄크레두는 심각한 건강 이상으로 쓰러져 입원했습니다.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었고, 상파울루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4월 21일, 단 하루도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공화국'의 개막
부통령이던 조제 사르니(José Sarney)가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브라질은 이른바 '신공화국(Nova República)'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군정 이후 민주주의가 복원되고 새 헌법 제정 등 국가 체제의 재편이 진행된 브라질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