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역사에서 에스타도 노보(Estado Novo) 시기에 게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는 북부·중서부 지역을 브라질 본토와 통합한다는 목표 아래 '서부로의 행진'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서부로의 행진과 에스타도 노보 독재
소위 '서부로의 행진'은 에스타도 노보 독재 체제 하에서 게툴리우 바르가스 정부가 추진한 국가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사업은 당시 해안 지역과 단절되어 있다고 평가받던 브라질 북부 및 중서부 지역의 경제 통합과 인구 정착 촉진을 핵심 목표로 삼았습니다. 다만 이 행진은 목표를 부분적으로만 달성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1937년 쿠데타로 시작된 게툴리우 바르가스의 독재 통치 기간에 개발되었습니다. '서부로의 행진'은 정부의 공식 선전과 검열을 담당하던 언론선전국(DIP)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되었습니다.
경제 통합과 인구 정착 사업의 성공을 위해 정부는 이들 지역과 해안을 연결하고 농산물 유통을 원활하게 할 도로망 확충을 필수 과제로 규정했습니다. 특히 브라질 지리의 중심에 위치한 고이아스(Goiás) 주는 이 전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것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정부는 당대 브라질을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인 카시아누 리카르두(Cassiano Ricardo)를 기용했습니다. 그는 바르가스 정부에서 주요 신문의 공식 검열관으로 활동했고, 나시오날 방송(Rádio Nacional)의 정치문화부장도 겸임한 인물이었습니다.
카시아누 리카르두는 당시 바르가스 정권의 가장 두드러진 옹호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이념을 공유했던 그는 저서 『서부로의 행진: 깃발이 브라질의 사회·정치 형성에 미친 영향』에서 바르가스의 프로그램과 에스타도 노보 독재를 적극적으로 변호했습니다.
이 책에서 리카르두는 바르가스 정부가 추진한 프로젝트의 이념적 정당성을 구축했습니다. 그에게 '서부로의 행진'은 진정한 브라질성을 회복하고, 해안 도시를 오염시키는 '외래의 악습'으로부터 브라질을 해방시키는 길이었습니다. 실제로 바르가스 역시 외국인들을 파업 등 사회 불안을 일으키는 위험한 존재로 간주했습니다.
서부로의 행진의 구조
'서부로의 행진' 프로그램의 기본 골격은 브라질 중서부·북부와 해안 지역 간의 통합이었습니다. 이 통합은 양 지역의 인구 성장, 경제 개발, 도로망 확충이 결합된 형태로 추진되었습니다. 인구 정착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는 여러 주에 이주 정착촌을 건설했으며, 대상 지역에는 고이아스(Goiás), 아마조나스(Amazonas), 마토그로수(Mato Grosso), 파라(Pará), 마라냥(Maranhão)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경제 개발 측면에서 정부는 해당 지역을 활용해 농업 생산량을 늘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정부가 필수로 여기고 카시아누 리카르두 또한 강력히 지지한 조치는 소위 '라티푼디움(latifúndio)'이라 불리는 대규모 토지 소유의 해체였습니다. 리카르두의 제안은 소농 개발을 통해 가족 농업을 육성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만들어진 정착촌은 주로 가난한 브라질인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특히 경제 개발이 더딘 지역에 거주하는 북동부 주민들이 정부의 최우선 지원 대상이었습니다.
바르가스의 프로젝트는 부분적으로나마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프로그램 대상 지역에서 인구가 증가했고, 생산량과 도로망도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농장 해체 같은 일부 계획은 끝내 실행되지 않았으며, 정부가 조성한 정착촌들은 기반 시설과 국가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