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히틀러가 클라크 게이블을 생포하려다 보상금까지 걸었던 사연

아돌프 히틀러를 오직 독재자와 학살자라는 단일 프리즘으로만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적 감정이라곤 없는 괴물로만 치부하는 것이죠. 이는 연쇄살인마를 대하는 시선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들의 범죄 행위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다른 모든 면을 가려버리기 때문입니다.

괴물의 뒷모습을 조명하다

비교적 최근에야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인물들의 '숨겨진 얼굴'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갱스터 영화에서처럼 때로는 친근하고, 때로는 우습게, 때로는 거의 사랑스럽게 그려지는 악당의 이면 말이죠. 나치의 수괴 히틀러 역시 전직 측근들의 증언 덕분에 그런 재조명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채식주의자라던 그가 자정에 일어나 폭식하듯 과자를 먹던 습관, 동물을 사랑하고 특히 개를 아꼈던 일, 그리고 우리가 주목할 영화에 대한 남다른 취향 등이 새롭게 알려졌습니다.

히틀러가 사랑한 '할리우드의 왕'

여느 영화광처럼 히틀러에게도 최애 스타가 있었습니다. 1930년대 정점에 있던 그레타 가르보는 춘희(The Lady of the Camellias)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클라크 게이블은 '할리우드의 왕(The King)'이라 불리며 히틀러의 우상이었습니다. 이 별명은 1938년 스펜서 트레이시가 팬들에 둘러싸인 게이블의 차를 보며 외친 풍자적 찬사에서 비롯됐고, 영화 평론가 에드 설리번과 동급생들의 장난스러운 '대관식' 퍼포먼스를 통해 널리 퍼졌습니다. 퓌러는 '왕'을 흠모했고, 두 사람의 운명이 이토록 기묘하게 얽히리란 건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히틀러가 클라크 게이블을 생포하려다 보상금까지 걸었던 사연
히틀러가 동경했던 '할리우드의 왕' 클라크 게이블

전쟁터로 나선 할리우드 스타들

제2차 세계대전은 이름 그대로 전 지구적 충돌이었습니다. 교전국과 전장이 된 국가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휘말렸죠. 놀랍게도 당대 최고 스타들 다수가 자원입대했습니다. 글렌 포드처럼 후방에서 선전 활동에 나선 이도 있고, 록 허드슨처럼 항공기 정비사로 비교적 안전한 보직을 맡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전선에 선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 찰턴 헤스턴: B-25 무전수
  • 찰스 브론슨: B-29 기관총수 (퍼플하트 수훈, 리 마빈도 사이판 전투 해병으로 동일 수훈)
  • 잭 팰런스: B-24 조종사 (격추당해 얼굴에 평생 흉터)
  • 알렉 기네스: 영국 해군 입대, 시칠리아 상륙작전 참전
  • 멜 브룩스: 지뢰 제거병

제임스 스튜어트(중대장, 월터 마타우를 부관으로 둠, 1956년 중장 예편)나 데이비드 니븐(소총연대 중령, 아이젠하워가 직접 훈장 수여)처럼 고위 장교로 예편한 경우도 여럿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자원한 게이블

클라크 게이블 역시 특권적인 할리우드 생활을 뒤로하고 전장으로 향했습니다. 1939년 당대 최고 여배우 캐롤 롬바드와 결혼했는데(세 번째 아내), 그는 그녀를 생애 최고의 사랑이라 여겼습니다. 친구들도 이를 증언했죠.

히틀러가 클라크 게이블을 생포하려다 보상금까지 걸었던 사연
게이블의 생애 최고의 사랑, 캐롤 롬바드

하지만 1942년 비극이 닥쳤습니다. 롬바드가 전쟁 채권 판매 독려차 인디애나로 향하던 DC-3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유작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To Be or Not to Be)는 독일 침공 하의 폴란드를 배경으로 하는데, "비행기 타면 무슨 일이 생기겠어?"라는 그녀의 대사는 최종 편집에서 삭제됐습니다.

할리우드는 큰 충격에 빠졌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롬바드를 "전쟁에서 희생된 최초의 미국 여성"으로 추대하며 자유메달을 추서했습니다.

마흔한 살의 신병, 최전선을 자청하다

게이블은 깊은 우울증과 음주로 무너져 내렸지만, 아내가 생전 권했던 대로 선전 활동에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MGM의 반대에도 경영진은 결국 양보했고, 그는 배우 생활을 접고 나치에 맞서 싸우려 입대했습니다.

이미 마흔한 살로 입대 연령 제한을 넘긴 그는 인맥을 총동원해야 했습니다. 루스벨트에게 전보를 치기도 했고, 친구 폴 만츠가 피닉스의 루크 스미스 대령 면담을 주선해 헨리 아놀드 장군이 포병 장교 자리를 제안하며 미 육군 항공대(USAAF) 입대가 성사됐습니다. MGM은 촬영감독 앤드루 매킨타이어를 동행시켜 그를 감시(?)하게 했습니다.

플로리다에서 13개월 훈련을 받은 게이블은 2,600명 중 700등으로 소위 임관했습니다. 초기 임무는 매킨타이어와 함께 공군 모병 홍보영화 촬영이었고, 이 과정에서 대위로 진급했습니다. 하지만 1943년 영국 배치 후 그는 홍보 업무에 싫증 나 B-17 폭격기의 기관총수 보직을 고집해 관철시켰습니다. 총 24회 출격 중 5회 실전 참여로 항공메달과 수훈비행십자장을 받았습니다.

히틀러가 클라크 게이블을 생포하려다 보상금까지 걸었던 사연
B-17 '플라잉 포트리스' 기관총수로 출격하던 게이블

히틀러의 납치 지시와 보상금

게이블의 유럽 주둔은 독일 정보망에 즉각 포착됐습니다. '할리우드의 왕'의 인기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이었고, 히틀러는 그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곧 독일군 사이에 "게이블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이는 생포 작전으로 비화됐습니다.

히틀러 본인이 게이블을 산 채로 납치해 베를린으로 데려오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얘기가 퍼졌습니다. 선전 효과도 노리고 개인적 팬심도 채우려는 의도였죠. 납치 계획은 독일군 수뇌부가 "실행 불가능"이라 판단해 무산됐지만, 이후 히틀러가 게이블을 무사히 생포해오는 자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공식 문서가 남아 있지 않아 진위와 심각성은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게이블이 탄 폭격기가 두 차례나 피격당했고(그 중 한 번은 독일 본토 공습 중), 대공포탄이 동체를 관통해 승무원 2명이 즉사하고 게이블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전선에서 물러나 귀국하다

이 소식에 MGM 경영진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게이블이 포로가 되면 나치는 그를 "서커스 원숭이처럼 전시할 것"이라며 후방 이전을 종용했고, 1943년 10월 그는 교체를 받아들였습니다. 나이도 명분이 됐죠.

이듬달 수많은 훈장을 달고 미국으로 귀환했습니다. 촬영해온 선전영화 소재는 전황이 유리해지며 공군병이 넉넉해져 당초 목적은 잃었지만, 편집을 거쳐 컴뱃 아메리카(Combat America)란 제목으로 개봉됐습니다.

1944년 5월 소령으로 진급했고, 6월 현역에서 완전히 제대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제대 서류에 서명한 장교가 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 대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