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 서진 운동과 남북전쟁, 격동의 확장 시대
19세기 미국은 '서진 운동(西進運動)'이라 불리는 대대적인 영토 확장을 통해 국토를 급격히 넓혀갔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이 나라는 미국 역사상 가장 처참한 내전인 남북전쟁으로 국가가 둘로 갈라지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독립을 쟁취한 직후 미국은 정치 제도를 정비하고 국민 전체에 애국심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습니다. 19세기 내내 미국은 영토의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거쳤는데, 이 시기 최대의 특징은 단연 '서진 운동'을 통한 영토 팽창이었습니다.
서진 운동
19세기 내내 미국은 북아메리카 동부의 좁은 지역, 즉 '13개 식민지'에서 출발하여 중부 평원 지대를 빠르게, 그리고 공격적으로 점령해 나갔고, 마침내 태평양에 닿은 서해안까지 도달하는 영토 확장 과정을 밟았습니다.
이러한 영토 확장은 '서진 행진(Westward March)'로 알려져 있으며, 18세기 13개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자마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1783년 파리 조약 체결 이후, 미국 정착민들은 애팔래치아 산맥부터 미시시피 강에 이르는 광대한 서부 토지를 영국으로부터 인정받았습니다.
이 광대한 토지는 원래 영국이 7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물리치며 정복한 땅으로, 미국 정착민들이 오랫동안 손에 넣고 싶어 했던 지역이었습니다. 실제로 모국인 영국이 이 지역의 식민 개척을 금지한 것이 정착민들과 영국 간의 관계를 악화시킨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독립 후 이 지역 전체는 미국인들이 점령했고,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강제로 이주당했습니다.
미국인들의 서부 확장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는 외교와 영토 매입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이었습니다. 19세기 동안 미국은 다른 유럽 국가들로부터 광대한 영토를 매입했는데, 구체적으로 루이지애나는 1803년 프랑스로부터, 플로리다는 1819년 스페인으로부터, 알래스카는 1867년 러시아로부터 구입했습니다.
프랑스가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판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을 계속 수행하기 위해 자금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은 나폴레옹 시대의 혼란 속에서 플로리다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되자,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해당 지역을 매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는 이 지역이 영국에 침략당할 위험과 당면한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알래스카를 팔았습니다.
미국인들의 서부 영토 점령은 당시 등장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이념에 의해 추진되었습니다. 이 이념은 1845년 한 기자가 쓴 기사에서 공식적으로 탄생했으며, 미국인이 서부를 소유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을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미국인들은 이러한 신의 예정론을 내세워 영토 정복 과정에서 저질러진 모든 폭력을 정당화했습니다.
또한 이 영토 확장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홈스테드법(Homestead Act)을 통해 시민들이 서부로 이주해 정착하도록 장려했습니다. 1862년에 제정된 이 법률은 5년간 그 땅에 살겠다는 서약을 조건으로, 서부의 토지 구획을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희망하는 시민들에게 판매했습니다.
미국의 서진 행진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단연 원주민(인디언)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점령한 땅의 원래 주민이었던 이들은 19세기 내내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시달렸고, 백인을 위해 자리를 비우라는 요구에 못 이겨 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게다가 원주민 영토의 지속적인 축소와 들소(bison)의 거의 완전한 절멸로 인해 많은 원주민 부족의 생활 방식 자체가 파괴되었습니다.
멕시코-미국 전쟁
19세기에 미국인들은 외교만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서도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멕시코와의 갈등은 1820년대 이미 미국 정착민들이 텍사스를 점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까지 멕시코 당국은 이 정착민들이 해당 지역에 정착하고 개척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미국 정착민들과 멕시코 당국 사이에 이해관계의 충돌이 일어났고, 이는 정착민들의 반란, 즉 '텍사스 혁명'으로 번졌습니다. 그 결과 텍사스는 멕시코로부터 독립했고, 1836년 미국에 합병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멕시코는 미국과 국교를 끊었습니다.
10년 후, 로키산맥부터 태평양에 이르는 새로운 멕시코 영토에 대한 미국의 야망은 두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멕시코-미국 전쟁은 1846년에 시작되어 1848년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의 체결로 끝났습니다. 패전국이 된 멕시코는 영토의 상당 부분을 할양했고, 리오그란데 강이 양국 간의 새로운 국경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남북전쟁
19세기 내내 남부 주들과 북부 주들 사이에는 새로 정복한 영토에서 아프리카계 노예 노동력을 사용할 문제를 둘러싼 커다란 긴장이 존재했습니다. 북부인들은 노예 노동을 남부 주에서만 유지하고 새로운 영토로 확장하지 말자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남부인들은 노예제가 이 땅들에도 확대되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이 논쟁은 1850년대 캔자스 등 일부 지역에서 두 진영 민병대 간의 소규모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다 대통령 선거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승리하자, 양측의 대립은 마침내 전쟁으로 치닫게 됩니다. 링컨의 승리에 불만을 품은 남부인들은 분리 독립, 즉 연방 탈퇴를 선언하고 아메리카 연합국을 결성했습니다.
남부의 연방 탈퇴로 1861년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북부 연방은 남부의 공격에 대응해 약 8만 명의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흔히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이라 불리는 이 내전은 1865년까지 계속되었고, 남부의 패배와 함께 약 6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남긴 채 막을 내렸습니다.
분리 독립을 선언했던 남부 주들은 연방에 재편입되었고, 패전의 결과로 수정헌법 제13조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의 노예제 폐지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주들은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파괴 때문에 대대적인 재건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마무리하며
19세기 미국은 서진 운동을 통해 대륙을 가로지르는 강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원주민의 고통과 멕시코로부터의 영토 할양, 그리고 노예제를 둘러싼 처절한 내전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확장과 갈등은 오늘날 미국의 영토적·사회적 기반을 형성한 결정적인 시간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