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욤 키푸르 전쟁과 석유 위기: 1973년, 세계 경제를 뒤흔든 20일간의 전쟁

욤 키푸르 전쟁은 1973년 10월 약 20일간 지속된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분쟁입니다. 유대교 최대 성일인 '속죄일(욤 키푸르)'에 벌어진 이 군사 행동은 석유 판매 보이콧으로 이어졌고, 자본주의 경제 전반의 위기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욤 키푸르 전쟁과 석유 위기: 1973년, 세계 경제를 뒤흔든 20일간의 전쟁

글: 탈레스 핀토(Tales Pinto)

욤 키푸르 전쟁의 배경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의 수많은 갈등 가운데 욤 키푸르 전쟁(Yom Kippur War)은 1973년 10월 약 20일간 이어졌습니다. 이 전쟁의 이름은 유대교 명절인 '속죄일', 즉 히브리어로 '욤 키푸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유대인들이 명절을 기념하는 시기와 이스라엘군 정보 체계의 허점을 틈타 1973년 10월 6일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욤 키푸르 전쟁의 주요 원인은 1967년 6월 6일 전쟁(Six Day War)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와 이집트 영토를 점령·병합한 데 있습니다. 해당 영토에는 시나이 반도, 수에즈 운하 일부,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골란 고원이 포함되었습니다.

기습 공격과 전황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군을 완전히 기습했습니다. 특히 6일 전쟁에서의 압도적 승리 이후 아랍 국가들이 감히 공격하지 않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군부의 오만에 더해 정보 체계에도 결함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핵심 정보원은 전(前)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사위였던 아슈라프 마르완(Ashraf Marwan)이었는데, 그가 제공한 정보가 늦어지면서 시리아·이집트군의 움직임 파악이 크게 지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집트군은 시나이 반도에서 이스라엘이 장악한 지역 깊숙이 15km까지 진격했습니다. 수에즈 운하를 따라 벌어진 교전에서 이스라엘은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공으로 이집트군의 진격은 저지되었고, 이스라엘군은 오히려 시리아 영내로 진입해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까지 도달했습니다.

강대국의 개입과 휴전

전쟁은 시작된 지 약 20일 만에 막을 내렸는데, 이는 미국, 유엔(UN), 소련이 휴전을 성사시키기 위해 적극 개입했기 때문입니다. 소련은 동맹국인 시리아 편에 서서 직접 참전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1967년에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지 않았습니다.

석유 위기의 시작

욤 키푸르 전쟁은 여러 중대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국가들에 대한 아랍 산유국 및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석유 판매 보이콧이었습니다. 판매 제한으로 배럴당 유가는 급격히 치솟았고, 증권 시장은 붕괴했으며, 자본주의 경제 전반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석유 위기(Oil Crisis)로 알려진 사태입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부각

한편 이 전쟁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국제적인 관심을 집중시키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고향에서 추방된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졌고, 이는 야세르 아라파트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정치적 위상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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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ChameleonsEye / Shuttersto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