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땅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 폭풍 같은 롬멜이 이끄는 아프리카군단의 선발 부대들은 곧바로 공세에 나섰다. 이탈리아 동맹군이 허둥지둥 내준 영토를 쉽고 빠르게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성공은 기습 효과와 더불어 영국군의 열악한 배치와 분산된 전력 배치에 크게 힘입은 바였다.
토브룩, 뼈아픈 첫 대규모 전투
1941년 4월 토브룩에서 벌어진 첫 대규모 전투는 실패로 끝났다. 롬멜이 충분하지 않은 병력을 전장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사막 환경에 대한 훈련이 부족했던 야간 기습 부대는 어둠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혼란에 빠졌고, 수비군에게 반격할 기회를 스스로 제공하고 말았다. 이번 실패로 인한 손실은 사상자와 실종자를 합쳐 600명에 달했다.
크루세이더 작전과 눈부신 반격
1941년 11월, 영국군의 새로운 공세인 '크루세이더 작전'이 개시되었다. 당시 벌어진 전투 가운데 하나에서 제15기갑사단 산하 보병 부대는 같은 사단의 공병대와 대전차포 병력으로 증원된 상태에서, 포병 지원도 전차 지원도 없이 영국군 방어선을 돌파해 적 포병 진지까지 진격했다. 이들은 적의 모든 반격을 물리치고 수많은 적 전차를 파괴했으며, 포병 2개 중대를 제압하고 영국군 600명을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렸다.
토브룩 함락과 원수 지팡이
1942년 5월 말, 아프리카군단은 다시 토브룩으로 돌아왔고 이번에는 도시를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승리 덕분에 롬멜은 원수 지팡이를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아프리카군단은 후퇴하는 영국군을 계속 추격하여, 엘 알라메인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한 적까지 밀어붙였다.
그러나 지쳐버린 병사들이 증원된 영국군 방어선을 돌파하려 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적의 대반격과 마주하자 추축국 전선은 무너지고 말았다. 한편 그동안 연합군은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상륙해 점령을 완료한 상태였으며, 롬멜의 배후 남쪽 튀니지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튀니지로의 후퇴, 그리고 종언
아프리카군단은 추격해오는 영국 제8군과 치열한 지연 전투를 벌이며 한 걸음씩 튀니지로 후퇴했다. 롬멜은 어느 시점에서 반격을 감행하기도 했지만 실패했고, 튀니지 앞 마지막 강력한 방어 거점이었던 마레트 방어선을 사수하는 데도 실패했다. 몇 달 후 모든 것이 끝났다. 아프리카군단의 영웅적인 부대들은 마침내 무기를 내려놓았지만, 그들이 남긴 전설은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아프리카군단의 주력 사단들
제15기갑사단
제15기갑사단은 1941년 6월 영국군과의 교전에 참여해 적의 공세('브레비티 작전', '배틀액스 작전')를 격퇴했으며, 특히 1941년 11월 '크루세이더 작전' 기간 동안 두드러진 활약을 펼쳐 영국군 상대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동시에 매우 심각한 손실도 입었고, 이로 인해 재편성이 완료될 때까지 전선에서 철수해야 했다.
1942년 1월, 병력과 전차로 증강된 사단은 벵가지 탈환에 성공한 롬멜의 역공세에 합류했다. 같은 해 5월에는 가잘라 전투와 토브룩 함락에 참전했으며, 이후 엘 알라메인 방어선까지 밀려나는 영국군 추격전에도 가담했다.
7월 1일부터 9월 2일 사이, 제15기갑사단은 엘 알라메인 진지에 대한 결실 없는 공격들과 알람 엘 할파 전투에 참여했다.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사단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고, 잔존 병력은 튀니지로 후퇴했다. 그곳에서 재편성을 마친 사단은 영국군, 그리고 그리스 신성중대(히에라 로호스) 병력에 맞서는 독일군의 맹렬한 반격(크사르 릴란 전투)에 참전했다. 그러나 모든 반격은 격퇴되었고, 1943년 5월까지 제15기갑사단은 튀니지의 다른 독일군과 마찬가지로 무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제21기갑사단
제5경사단으로 출발해 훗날 제21기갑사단으로 개편된 이 부대 역시 아프리카군단의 모든 작전에 참여했으며, 특히 토브룩 일대의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엘 알라메인 패배 후에는 튀니지로 후퇴했다.
그곳에서 이 사단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독일군이 거둔 마지막 승리인 카세린 통로 전투에 참전했다. 베테랑 병사들은 전투 경험이 부족한 미군을 상대로 큰 어려움 없이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이 성공은 곧 제21기갑사단의 마지막 찬가였다. 튀니지 추축국 전선이 붕괴한 후, 사단은 1943년 5월 13일 항복해야 했다.
제90경보병사단
제90경보병사단은 아프리카의 모든 전투에서 준수한 전과를 올렸지만, 그만큼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1942년 여름, 사단의 전투 가능 병력은 고작 1,600명까지 줄어들었다. 엘 알라메인 패배 후 튀니지에서 재편성되어 5,700명 규모를 회복했으나, 그곳에서 추축국 전선 붕괴 후 5월 12일 마침내 항복했다. 사단의 마지막이자 가장 오래 재임한 지휘관은 테오도르 폰 스포네크 백작 중장으로, 그는 1942년 9월 22일부터 종전까지 지휘관직을 수행했다.
제164경보병사단
제164경보병사단은 제1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첫 실전을 치렀다. 1942년 10월 엘 알라메인에서의 최후 패배 이후에는 후위 임무를 맡아 극심한 손실을 입었다. 이후 튀니지에서 재편성되어 마레트 방어선 전투에서 영웅적인 저항을 펼쳤으나, 1943년 4월까지 차량을 단 한 대도 보유하지 못할 처지가 되었다. 사단은 1943년 5월 13일 항복했다.
포로가 된 아프리카군단 병사들은 탈나치화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1946년부터 1947년에 걸쳐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