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미국 서부 행진: 19세기 영토 확장의 역사

미국 서부 행진: 19세기 영토 확장의 역사

'서부 행진(Westward March)'은 19세기 내내 진행된 미국의 영토 확장 과정을 가리키는 말로, 이를 통해 미국은 마침내 태평양 연안, 즉 미국 서해안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서부 행진이란?

서부 행진은 19세기 미합중국(USA)에서 일어난 영토 확장 과정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영토 확장뿐 아니라 새로운 땅에 정착민을 이주·정착시키는 일까지 포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초기 13개 식민지에 머물러 있던 좁은 영토를 벗어나 중부 대평원을 거쳐 서해안까지 국경을 넓혀갔습니다.

미국의 영토 확장은 1776년부터 1781년까지 영국과 벌인 독립전쟁이 끝난 직후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식민지 주민들의 승리는 1783년 파리 조약 체결로 공식 인정되었으며, 이 조약은 13개 식민지의 독립과 미국이라는 새 국가의 탄생을 확정지었습니다.

이 조약의 또 다른 결과는 영국이 미국에 영토를 할양한 것이었습니다. 이 영토는 애팔래치아 산맥 지역부터 미시시피 강 기슭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원래 영국은 원주민과의 충돌을 우려해 식민지 주민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땅의 점유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습니다.

그러나 독립을 확보한 미국인들은 수천 명의 원주민 목숨을 대가로 이 땅들을 빠르게 점령해 나갔습니다. 미국의 영토 확장은 영토 매입과 전쟁을 통한 정복으로도 이루어졌는데, 매입과 외교를 통해 획득한 대표적인 영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루이지애나: 1803년 프랑스로부터 매입
  • 플로리다: 1819년 스페인으로부터 매입
  • 알래스카: 1867년 러시아로부터 매입

루이지애나 매입

루이지애나는 19세기 초인 1803년 프랑스로부터 매입한 영토입니다. 이 매입은 유럽 대륙에서 전쟁을 수행 중이던 나폴레옹 군대에 충당할 자금이 절실했던 프랑스의 사정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아메리카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당장의 재정 확보가 더 시급했고, 결국 프랑스는 1,500만 달러에 이 지역을 판매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플로리다 매입

플로리다 매입은 스페인이 크게 약화되던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에서 잇달아 일어나는 독립 운동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플로리다를 노린 미국 정부는 '플로리다의 원주민들이 위험 요소'라며 스페인 정부에 영토 매각을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힘이 빠진 스페인 정부는 미국과의 전쟁을 피하는 방편으로 매각에 동의했고, 플로리다는 1819년 애덤스-오니스 조약 체결과 함께 500만 달러에 판매되었습니다.

알래스카 매입

마지막으로 매입을 통해 획득한 영토는 알래스카로, 1867년 러시아와의 협정을 통해 얻었습니다. 크림 전쟁 이후 러시아는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했고, 알래스카처럼 손해만 보는 영토는 짐으로 여겨져 매각 대상이 되었습니다. 미국 국무장관 윌리엄 H. 수어드(William H. Seward)가 협상을 담당했으며, 미국은 알래스카 영토에 72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홈스테드법과 서부 정착

이러한 영토 매입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새 영토로 이주하여 정착했습니다. 광활한 땅에 사람들이 몰려든 데에는 미국 정부의 홈스테드법(Homestead Act), 즉 정착 장려법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법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1862년에 제정한 것으로, 서부의 땅에 정착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매우 낮은 가격으로 토지를 분배했습니다. 정부가 요구한 조건은 배정받은 구획을 최소 5년간 거주하며 경작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미국인들의 서부 확장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신념에 의해 더욱 고취되었습니다. 이 신념에 따르면 미국은 위대하고 번영하도록 하나님께 선택된 국가였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확장 과정에서 저질러진 온갖 폭력, 특히 원주민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사용되었습니다.

미국-멕시코 전쟁

19세기 미국이 새 영토를 손에 넣은 방법은 외교와 매입만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확장은 전쟁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2년간 지속된 미국-멕시코 전쟁입니다.

미국-멕시코 전쟁은 1846년부터 1848년까지 벌어졌으며, 텍사스 문제를 둘러싸고 19세기 내내 악화되어 온 양국 관계가 빚은 결과였습니다. 원래 텍사스는 멕시코 영토였으나, 1821년부터 멕시코 정부의 허가를 받은 미국인 정착민들이 이곳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인 정착민들은 멕시코 정부가 정한 법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멕시코의 통제에 반기를 들었고, 이 반란의 결과로 1830년대 멕시코는 텍사스를 미국에 할양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두 나라 사이에 큰 갈등의 씨앗을 남겼습니다.

1840년대에 들어 미국은 캘리포니아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고, 멕시코 정부는 자국 영토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패배한 멕시코는 캘리포니아는 물론 뉴멕시코 영토까지 할양해야만 했습니다.

원주민에 대한 폭력과 '눈물의 길'

미국의 서부 행진은 19세기 내내 원주민들의 희생 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의 폭력성으로 인해 수천 명의 원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더 많은 이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땅과 오랜 삶의 방식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1830년대부터 미국 여러 주는 백인 농부들이 이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원주민들에게 토지를 떠날 것을 강요하는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이러한 강제 이주 법은 눈물의 길(Trail of Tears)로 알려진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수천 명의 원주민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 수백 킬로미터를 강제 행군하여 정부가 지정한 새 거주지로 이주해야 했던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행군 도중 무려 15,000명에 달하는 원주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미국 중부 지역의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 자체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들은 들소 사냥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했기에 광활한 땅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