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1974~1975): 살라자르 독재의 종말과 노동자들의 투쟁

카네이션 혁명으로 살라자르 정권이 무너지면서, 강력한 대중 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글: 탈레스 핀토(Tales Pinto)

1974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진 포르투갈 혁명은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의 파시스트 독재 48년에 종지부를 찍으며, 이 나라 정치사의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 민주주의는 결코 선물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장과 농촌, 도시 빈민가에서 노동자들이 주도한 치열한 사회 투쟁 끝에 쟁취한 결과물이었습니다.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1974~1975): 살라자르 독재의 종말과 노동자들의 투쟁
수도 리스본은 산업 노동자들의 투쟁과 주거권 투쟁이 벌어진 주요 무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군부운동의 쿠데타와 노동자 자율관리

1974년 4월 25일 군부운동(MFA)이 일으킨 쿠데타는 오랫동안 살라자르 정권의 탄압 아래 억눌려 있던 각계의 요구가 실질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마르셀루 카에타누(Marcelo Caetano)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임시정부가 출범하면서 노동자들은 조직화의 기회를 얻었고, 그 결과 강력한 자율적 운동이 탄생했습니다.

이 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위원회'의 구성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위원회를 통해 사용자에게 요구를 제기했고, 이후 많은 기업주들이 해외로 도피하거나 공장 문을 닫자 위원회 주도로 직접 생산을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율관리와 노동자 통제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은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도 산업 생산을 유지해냈습니다.

농촌의 토지 점거와 집단 생산

비슷한 움직임은 농촌에서도 펼쳐졌습니다. 특히 대농장이 집중된 남부 지역에서는 농업 노동자들이 토지를 점거해 토지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점거 이후 노동자들은 임금과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 집단생산단위와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농업 생산량이 늘었고, 비료·농기구 등 농업에 필수적인 상품의 산업 생산에도 활력이 불어넣어졌습니다.

빈민가의 주거 투쟁

도시 빈민가에서는 혁명 운동이 더 나은 주거 여건을 위한 투쟁을 촉발했습니다. 대도시의 빈민가로 불리던 이곳은 열악한 주거 환경을 안고 있었고, 1974년 4월 25일 쿠데타 이후 주민들은 대규모로 주택을 점거하며 주거 환경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정치 권력 투쟁과 국유화

국가 정치 권력을 둘러싼 투쟁에는 여러 정당이 동원되었습니다. 초기에는 군부운동 내 좌파 세력의 지지를 받은 포르투갈 공산당(PCP)이 큰 영향력을 확보했고, 이는 1975년 3월 11일 이후 금융 시스템과 여러 기업의 국유화로 이어졌습니다.

혁명의 좌절과 대의민주주의의 확립

1974년 4월부터 1975년 11월까지 이 시기를 규정한 이 세 갈래 투쟁은 카네이션 혁명에 강력한 대중적 성격을 부여했으며,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재편하는 데 직접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5년 11월 25일, 군 내 보수 세력은 극좌의 쿠데타 시도에 대응해 사회당의 지지를 받은 역쿠데타를 감행했고, 국가의 제도적 장치를 동원해 노동자들의 행동을 억누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21세기 초까지 이어지는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