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사군툼 공성전의 재개: 한니발과 카르타고군의 맹공

며칠 동안 전황은 공성전이라기보다는 봉쇄에 가까웠다. 카르타고인들은 한니발의 부상이 아무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투야말로 없었지만, 공성 장비와 진영 구축 작업은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윽고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더욱 강렬했고,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놀라운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갱도와 공성추(ram)는 앞으로 밀고 나아갔다. 카르타고군은 상당한 규모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일설에는 15만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포위된 사군툼 사람들은 모든 곳을 방어하고 경계해야 했기 때문에 병력을 크게 분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미 항복 직전에 몰려 있었다. 공성추가 성벽을 연달아 두드렸고, 많은 부분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커다란 결구가 생겨 도시의 한쪽 면이 무방비로 드러났다. 이어서 세 개의 탑과 그 사이의 성벽이 끔찍한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고, 카르타고인들은 이 붕괴로 도시가 이제 손에 들어왔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양측은 마치 서로에게 성벽이 있는 것처럼 전투에 돌입했다. 이는 공성전에서 돌발적으로 벌어지는 비정규적인 충돌이 아니라, 개활지에서처럼 두 군대가 전열을 갖추고 정면으로 맞선 싸움이었다. 무너진 성벽의 잔해와 바로 인접한 도시의 가옥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한쪽은 희망이, 다른 쪽은 절망이 용기를 불태웠다. 카르타고인들은 마지막 일격으로 도시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었고, 사군툼 사람들은 더 이상 성벽이 없는 조국을 자신들의 육신으로 막아섰다. 누구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버린 자리를 적이 즉시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투가 격렬하고 완강할수록 더욱 처참한 살육의 현장이 되었다. 무기와 몸 사이에는 단 한 줄의 거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화염 투창 '팔라리카'의 위력

사군툼 사람들은 '팔라리카(falarica)'라고 부르는 독특한 투창을 사용했다. 자루는 전체 길이에 걸쳐 원통형으로 깎은 전나무 목재로 만들어졌으며, 쇠붙이가 드러나는 부분만 예외였다. 로마의 필룸(pilum)처럼 창끝은 사각형 단면이었고, 삼(oakum)으로 채운 뒤 역청을 발랐다. 길이는 3피트에 달해 갑옷과 몸을 함께 꿰뚫을 만큼 강력했다.

그러나 팔라리카가 방패에 막혀 몸까지 관통하지 못한 경우에도 여전히 공포를 퍼뜨렸다. 이 무기는 불을 붙여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날아가는 움직임만으로도 불꽃이 격렬하게 타올라, 화염에 시달린 병사는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내던져야 했다. 그렇게 무방비하게 드러난 병사에게는 곧이어 새로운 공격이 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