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헤르메스: 그리스 신화의 전령이자 상업·여행·도둑의 신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Ἑρμῆς / Hermễs, 도리스 방언으로는 Ἑρμᾶς / Hermãs)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로마 신화의 메르쿠리우스(Mercury)에 해당하는 신이다. 그는 상업의 신이자 길과 갈림길의 수호자, 여행자와 도둑의 보호자,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영혼 안내자, 그리고 신들의 전령으로 불렸다.

탄생과 청년기

헤르메스는 제우스와 마이아(Maia)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따라서 아틀라스의 손자이기도 하다. 그는 아르카디아 킬레네 산의 동굴에서 어느 날 아침 태어났는데, 호메로스 찬가에 따르면 놀랍게도 정오 무렵 이미 다음과 같은 발명들을 이루어냈다.

  • πυρεῖα(퓌레이아) — 나무 조각을 서로 비벼 불을 만드는 기술
  • 발자국을 감추기 위한 눈 위의 신발(스노슈즈)
  • 거북 등껍질로 만든 현악기 리라(lyra)
  • 목관악기 시링크스(syrinx)

같은 날 저녁, 그는 피에리아에서 이복형 아폴론의 가축 떼를 훔쳐 달아난다. 아폴론이 도둑의 정체를 알아차렸을 때, 헤르메스는 리라 연주로 형을 매혹시켰고, 아폴론은 악기와 맞바꿔 자신의 가축 떼, 황금 지팡이 ῥάϐδος(라브도스, 훗날의 카두케우스), 그리고 점술용 자갈 ψῆφοι(프세포이)를 통한 예언 능력을 선물했다. 아울러 아폴론은 그를 벌꿀정령 여인들 '트리아이'의 신탁 권능의 주인으로 삼았다.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에 따르면, 헤르메스는 리카온의 아들이자 아르카디아의 아카케시온을 건설한 아카코스에게 길러졌으며, 이 때문에 '아카케시오스(Akakếsios)'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사랑과 자손

헤르메스는 흔히 "첫 수염이 돋아난, 이 나이만의 매력을 지닌" 청년으로 묘사된다(『오디세이아』 X권 278행). 그는 카리테스(우아의 여신들)와 호라이(계절의 여신들)의 곁을 즐겼으며, 헤파이스토스에게 포박당한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장면을 보고는 "사슬이 세 배로 늘어도 좋으니 여신의 품에서 잠들고 싶다"고 외치기도 했다.

실제로 아프로디테와의 사이에서 그는 남녀 양성의 신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낳았으며, 후대 전승에서는 사랑의 신 에로스 역시 그의 아들로 여겨졌다. 문헌에 따라 그는 판(Pan)처럼 방종한 성욕을 지닌 목장의 신들의 아버지로 기록된다. 판의 어머니는 '드류오프스의 딸'(호메로스 찬가), 님프 팀브리스 또는 히브리스(위-아폴로도로스), 혹은 님프 페넬로페(『디오니소스카』)로 다양하게 전해지며, 일부 후대 설화에서는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까지 그의 연인으로 언급된다.

판이나 음경 신 프리아포스 역시 때때로 그의 아들로 여겨지며, 헤르메스 자신도 인간의 아름다움을 사랑했기에 발기한 모습으로 묘사되곤 했다. 그의 사랑은 여성(님프들)뿐 아니라 남성(폴리데우케스, 아세소스의 미남 안테오스 등)에게도 향했다. 또한 페르세포네의 구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며, 『디오니소스카』의 여러 노래(특히 VI권)에서는 설득의 여신 페이토를 아내로 삼은 것으로 인정받는다.

이 밖에도 헤라클레스의 연인이었던 아브데라, 판 또는 아폴론의 사랑을 받은 다프니스 같은 신화 속 유명한 연인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 외의 자녀로는 오톨리코스와 케뤽스가 있다.

역할과 활동

트로이 전쟁에서 헤르메스는 아카이아 진영에 섰지만 전투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제우스의 전령이자 통역사(그의 이름은 '통역사'를 뜻하는 ἑρμηνεύς / 헤르메네우스와 어원이 관련된다)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 황금 사과를 두고 경쟁하던 아프로디테, 아테나, 헤라를 이다 산으로 인도하여 파리스의 심판에 회부했다.
  •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온 프리아모스를 그리스 진영까지 호위했다.
  • 아가멤논을 살해하지 말라고 아이기스토스에게 경고했으나 실패했다.
  •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풀어주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 전쟁이 끝난 후에는 헬레네를 이집트로 데려갔다.

위-아폴로도로스에 따르면, 제우스의 부탁으로 이오를 되찾기 위해 헤라가 감시를 맡긴 백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를 죽였으며, 이로 인해 '아르게이폰테스(Ἀργειφόντης, 아르고스의 살해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다만 이 별칭의 해석은 논란이 있는데, 아르고스 전설은 이미 이 별칭을 사용하던 호메로스보다 후대의 것일 가능성이 있어, '흰 빛으로 눈부신'이라는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아테나처럼 영웅들의 안내자이기도 했다. 그는 페르세우스의 메두사 토벌 원정을 이끌었고, 헤라클레스가 저승에 내려갈 때도 길을 안내했다.

무엇보다 그는 죽은 자의 영혼을 하데스로 인도하는 자였으며, Πομπαῖος(폠파이오스), 그리고 후대에는 Ψυχοπομπός(프시코폼포스, 영혼의 인도자)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오디세이아』의 결말에서는 구혼자들의 영혼을 아스포델로스 초원으로 인도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숭배와 신앙

헤르메스는 무엇보다 재치, 민첩함, 교활한 지혜, 행운의 의인화였다. 그래서 상인, 여행자, 도둑, 목자와 가축, 웅변가, 매춘부의 수호신이 되었다. 그리스 신들 중 인간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우호적인 신으로 여겨진 그는 인간에게 문자, 춤, 도량형, 피리와 리라, 그리고 꺼진 불을 되살리는 불씨 만드는 법을 주었다.

갈림길에는 그를 기리는 돌무더기를 쌓는 것이 관례였고, 지나가는 여행자마다 돌 하나씩을 덧쌓았다. 또한 길가에 세워진 헤르마이(Hermai)라 불리는 석비에는 신의 머리가 새겨지고 중앙에는 남근이 부조로 표현되었다(알키비아데스가 연루된 '헤르메스 석상 훼손 사건', 즉 헤르모코피다이 스캔들이 유명하다). 길에서의 우연한 만남이나 뜻밖의 행운은 '헤르메스의 선물'(ἕρμαιον / 헤르마이온, 행운이라는 뜻이기도 함)이라 불렸다.

헤라클레스와 함께 체육관과 팔라이스트라(레슬링장)의 수호신이기도 했으며, 그의 흉상은 항상 그곳에 안치되었다. 그는 운동선수를 보호하고 레슬링 경기를 처음 시작한 신으로 여겨졌다.

웅변가의 신으로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물은 꿀을 섞은 우유와 동물의 혀였다.

매우 인기 있는 신임에도 불구하고 공적 숭배는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르골리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여러 지역에서는 그에게 바치는 달 Ἕρμαιος(헤르마이오스, 10월 중순~11월 중순)를 달력에 넣었으며, 이는 죽은 자의 축제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상징성으로 아르고스에서는 장례식 30일째 되는 날 그에게 제사를 지냈다. 아테네의 안테스테리아 축제 셋째 날에는 죽은 자의 헤르메스, 즉 '크토니오스 헤르메스'에게 곡식 죽을 바쳤다.

또한 사모트라케의 대신들 성역에서는 대모신 아크시에로스-데메테르의 동반자로서 카드밀로스(Kadmilos)라는 이름으로 숭배되었다.

후대의 헬레니즘화된 이집트에서는 숨겨진 지혜의 신 토트(그리스식 명칭, 이집트어로는 제후티)와 동일시되면서, '세 번 가장 위대한 헤르메스', 즉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라는 이름으로 방대한 밀교 문고의 신화적 저자가 되었고, 이는 중세 연금술사들의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상징과 별칭

  • 속성: 페타소스(둥근 모자), 카두케우스, 날개 달린 샌들(πέδιλα / 페딜라), 스트리길(운동선수가 몸의 기름과 모래를 긁어내던 도구), 은화 주머니
  • 상징 동물: 숫양
  • 별칭(Epicleses): 아카케시오스(Ἀκακήσιος), 아르게이폰테스(Ἀργειφόντης), 크토니오스(Χθόνιος, 지하의), 프시코폼포스(Ψυχοπομπός, 영혼의 인도자)
  • 칭호: '황금 지팡이를 든 자'(Χρυσόρραπις / 크루소라피스)
  • 성역: 특히 크레타와 킬레네 산, 그리고 아르카디아와 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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