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붉은 깃발 아래: 스페인 제2공화국의 탄생과 격랑의 정치

붉은 깃발 아래: 스페인 제2공화국의 탄생과 격랑의 정치

5년의 간격을 두고 치러진 두 차례의 선거는 스페인 정치판을 뒤집어 놓으며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1931년 4월 12일, 혁명 직전의 긴장감 속에서 치러진 지방 선거는 기묘한 결과를 낳았다. 왕당파 시의원의 숫자가 공화파보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의 득표 분포는 명백한 공화파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잃었다고 판단한 알폰소 13세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도 왕좌를 떠나 스페인을 떠났다. 이듬해인 4월 15일, 스페인 제2공화국이 선포되었다.

니세토 알칼라사모라(국가원수 겸 각료평의회 의장)를 중심으로 알레한드로 레루스, 미겔 마우라, 마누엘 아사냐 디아스, 인달레시오 프리에토,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로 구성된 정부팀은 용감하게 업무에 착수했다.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 가운데 세 가지가 최우선 과제로 꼽혔다. 바로 농지 개혁, 자치 문제, 그리고 종교 문제였다.

농지 개혁의 좌절

첫 번째 과제인 토지 개혁에서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로 나뉜 공화파 진영 간의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토지 몰수 정책은 실망스러운 성과만 남겼다. 국가가 새로운 고용주가 되었지만, 이것이 농민들에게 나아진 점은 거의 없었다. 농업 노동임금이 인상되면서 오히려 실업이 늘어났고, 생활비는 계속 올랐으며 파업은 급증했다. 불만을 품은 농민과 노동자들은 하나둘 극좌 진영으로 기울었다.

자치와 종교 문제의 갈등

카탈루냐에 부여된 자치권은 바스크 지방과 나바라의 자치 열망을 자극했다. 분리주의 세력의 움직임은 공화국의 통합을 위협하는 요소로 떠올랐다. 한편 정부가 서투른 조치로 추진한 반성직주의 정책은 온건파 시민들의 불안과 분노를 샀다.

중도 지지층을 잃은 아사냐 내각은 정책을 좌경화했으나, 노동조합총연맹(CGT)으로 상징되는 극좌 세력에 오히려 추월당하고 말았다. 호세 산후르호 장군이 주도한 군사 반란(pronunciamiento)은 신속히 진압되었지만, 이후 각료들이 교체되는 정치 불안정의 시대가 열렸다.

우파의 부상과 인민전선의 승리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총선에서 스페인 자치권리연합(C.E.D.A.)이라는 정당과 호세 마리아 길 로블레스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우파가 승리한 것이다. 비교적 진보적인 사회 정책을 내걸었던 C.E.D.A.였지만, 좌익의 거센 물결을 막을 힘은 없었다. 결국 1936년 2월 총선에서 '인민전선(Frente Popular)'의 붉은 깃발 아래 좌파 진영이 승리를 거두며 스페인은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