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노폰(그리스어: Ξενοφῶν, 기원전 426년 또는 430년경 출생 ~ 기원전 355년경 사망)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역사가, 그리고 뛰어난 군사 지휘관이었다.
출생과 교육
펠로폰네소스 전쟁 초기에 아티카의 에르키아 데모스에서 태어난 크세노폰은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인 그릴로스의 아들이었다. 그는 테베에서 프로디코스를 비롯한 소피스트들과 폭넓게 교류했으며, 이후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어 철학을 배웠다.
페르시아 원정과 '만인의 퇴각'
삼십인의 참주 통치 이후 민주정 복원에 반대하던 그는 다리우스 2세의 아들인 소 키루스가 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에 맞서 일으킨 원정에 합류했다. 기원전 401년 쿠낙사 전투에서는 승부가 쉽게 갈리지 않았으나, 소 키루스가 전사하면서 전세는 페르시아 쪽으로 기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스군 지휘관인 스파르타의 클레아르코스가 포획되어 처형되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평원에 홀로 남겨진 그리스 용병 부대는 크세노폰을 후위 지휘관으로 선출했다. 그는 '만인'이라 불린 13,600명의 그리스인들의 퇴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이 과정은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인 『아나바시스』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산맥을 넘어 마침내 흑해(폰투스 에우크시누스)를 발견한 그리스 병사들이 외친 "탈라사! 탈라사!"("바다다! 바다다!")라는 함성은 역사 속 유명한 장면으로 남았다.
동료들과 함께 트라키아에 도착한 그는 왕위를 되찾도록 도운 세우테스 왕을 섬겼고, 이후 부하들을 스파르타의 아게실라오스 2세 왕 휘하에 보냈다.
추방과 말년
아테네로 돌아왔지만 환영받지 못한 그는 스파르타로 건너가 페르시아에서 작전 중이던 아게실라오스 2세의 군대에 합류했다. 당시 페르시아와 동맹 관계였던 아테네는 그를 추방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기원전 394년에는 코로네아 전투에서 아테네인들과 직접 맞서 싸웠다.
이후 엘리스의 스킬론트로 이주하여 20년 넘게 머무르며 『아나바시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그러나 스파르타와 엘리스 간의 전쟁이 일어나자 스킬론트를 떠나야 했고, 기원전 371년 코린토스로 피신했다.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으면서 기원전 367년 추방형이 해제되었지만, 그가 실제로 아테네로 돌아왔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후 그에 대한 정보는 전해지지 않으며, 기원전 355년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