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테베(그리스): 신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보이오티아의 고대 도시

개요

테베(고대 그리스어: Θῆβαι, 테바이 / 현대 그리스어: Θήβα, 티바)는 그리스 보이오티아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그리스 역사에서 그 중요성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이어 손꼽히며, 신화와 전설로서의 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는 테베를 '인간이 신을 낳은 유일한 도시'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현대의 테베는 2001년 기준 인구 약 23,820명의 도시로, 오늘날에도 고대의 영광을 간직한 유적과 함께 그리스 중부의 주요 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신화와 전설

카드모스와 도시의 건국

전설에 따르면 테베는 페니키아 도시 시돈의 왕 아게노르의 아들 카드모스가 페니키아 이주민들을 이끌고 세웠다고 전해진다. 카드모스는 제우스에게 황소의 모습으로 납치당한 여동생 유로파를 찾아 떠나 수많은 미지의 땅을 헤매다 마침내 델포이에 도착했다. 델포이의 여사제 피티아는 그에게 홀로 된 목초지에서 마주치는 암소를 따라가고, 암소가 멈춘 자리에 도시를 세우라고 예언했다.

신탁의 말대로 카드모스와 일행은 암소를 따랐고, 암소가 멈추자 카드모스는 아폴론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 동료들에게 샘물을 길어 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동료들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카드모스가 직접 찾아나섰고, 용이 그들을 모두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복수를 맹세한 그는 치열한 사투 끝에 용을 물리쳤다. 이때 여신 아테나가 나타나 용의 이빨을 땅에 심으라고 일렀고, 곧 무장한 전사들, 이른바 '스파르토이'가 흙에서 솟아나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다섯 명이 카드모스와 함께 테베를 건설했으며, 카드모스는 그 도시의 초대 왕이 되었다.

암피온과 제토스

이후 테베는 쌍둥이 형제 암피온과 제토스의 통치와 연결된다. 제토스는 테베(도시 이름의 유래가 된 인물)와 결혼했고, 암피온은 탄탈로스의 딸 니오베와 결혼했다. 니오베는 자신의 어머니 레토를 모욕한 대가로, 전승에 따라 열두 명 또는 열네 명이라는 자식들을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모두 잃는 비극을 겪었다.

오이디푸스와 도시의 저주

테베에는 유명한 오이디푸스 왕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인 줄도 모른 채 선대 왕 라이오스를 실수로 죽인 뒤, 수수께끼를 풀어 스핑크스의 압제로부터 도시를 구원했다. 그 보상으로 왕비 요카스타, 곧 자신의 친어머니와 결혼하게 되었다. 근친상간과 부친살해라는 이중의 죄 때문에 도시는 저주를 받아 끔찍한 역병에 시달렸고, 오이디푸스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역병이 사라졌다고 한다.

일곱 장군의 원정과 도시의 몰락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오이디푸스의 후손들 간의 왕위 계승 분쟁에서 비롯된 최초의 테베 원정을 언급한다. 폴리네이케스가 형 에테오클레스에 대항해 이끈 이른바 '일곱 장군의 원정'에는 미케네와 아르고스도 가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튀데우스의 두드러진 활약(IV, 377–397)에도 불구하고, 이 원정은 일곱 장군의 불경함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이어진 두 번째 원정에서는 에피고노이(후예들)가 트로이 전쟁 직전에 테베를 파괴했다고 하며(IV, 406–409), 이것이 『일리아스』 제2권의 '함대 목록'에 테베가 빠져 있는 이유로 설명된다. 호메로스의 작품 속에서 테베는 '일곱 성문을 가진 도시'로 묘사된다.


역사

미케네 시대와 초기 역사

테베는 미케네 그리스의 주요 궁전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아마도 강대한 왕국의 수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전승은 이 도시를 더 이전의 전설적 왕 오리고스(Ogygos)가 세운 것으로도 기록한다. 이후 '암흑기'로 불리는 쇠퇴기를 거친 뒤, 테베는 기원전 6세기에 다시 부상하여 비교적 느슨한 보이오티아 도시 연합의 맹주가 되었다. 그러나 연합 도시들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할 만큼 충분히 강력해지지는 못했다.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테베는 과두정체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제2차 페르시아 전쟁 당시 아테네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페르시아와 동맹을 맺고, 플라타이아 전투 직전에는 페르시아 장군 마르도니오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기원전 480~479년의 페르시아 지원은 테베가 기원전 446년까지 보이오티아 연합 내에서 우위를 잃는 결과를 낳았다.

기원전 431년, 테베는 519년 이래 불굴의 적이자 아테네의 동맹이었던 플라타이아를 공격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발화점을 제공했다. 기원전 424년 데리온 전투에서의 승리로 테베는 아테네가 보이오티아에 교두보를 다시 확보하는 것을 막았다. 기원전 404년 아테네가 함락되었을 때, 테베는 도시의 완전한 파괴를 강력히 주장한 도시들 중 하나였다.

테베 패권의 시대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테베와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패권을 두고 격렬히 경쟁했다. 테베는 펠로피다스와 에파메이논다스라는 두 걸출한 지도자 덕분에 비록 짧지만 패권을 손에 넣었다. 테베군은 기원전 371년 류크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를 격파했고, 이후 몇 년간 스파르타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나아가 테살리아 일부를 복속시키고 마케도니아 궁정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북방으로도 세력을 확장했다.

바로 이 시기(기원전 368년경), 마케도니아 왕 아민타스 3세의 차남 필립이 인질로 테베에 보내져 에파메이논다스의 지도 아래 군사와 정치를 배웠다. 그러나 기원전 362년 만티네이아 전투에서 에파메이논다스가 전사하면서 테베의 패권도 막을 내렸다.

마케도니아와의 충돌, 그리고 도시의 파괴

테베는 델포이 암피크티오니와 포키스 사이의 신성 전쟁에 개입하도록 필립을 초청하며 그의 그리스 진출에 일조했지만, 기원전 338년 필립이 아테네를 직접 위협하자 상황이 뒤집혔다. 테베인들은 이웃 아테네의 패배가 자신들에게도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을 우려하여 아테네와 손잡았고, 정예부대 '신성한 대대'가 있었음에도 케로네이아 전투에서 함께 패배했다. 필립은 이후 보이오티아 연합을 해체하고, 테베의 성채인 카드메이아에 마케도니아 수비대를 주둔시켰다.

기원전 335년, 알렉산더 대왕의 즉위 직후 테베인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일리리아에서 전쟁 중이던 젊은 왕은 단 5일 만에 기병하여 도시를 함락시켰고, 테베는 알렉산더가 의장으로 있는 코린토스 동맹의 결정에 따라 완전히 헐려 없어졌다. 한때 많은 이들에게 미움받던 도시에 대한 이 무자비한 응징은 그리스 전역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 기원전 317년 카산드로스가 도시의 재건에 착수하자, 수많은 그리스 도시들이 기부에 동참할 정도였다.

재건된 새로운 테베는 이후 로마 시대 전반에 걸쳐 존속하며 오랜 역사의 명맥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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