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토스(Pontus)는 그리스인들이 흑해에 접한 소아시아 북동부 지역을 부르던 이름이다. 다만 이 지역의 경계는 인접 왕국들의 이름처럼 자주 바뀌었다. 유일하게 확실하고 본질적인 경계는 오직 흑해 연안뿐이었다. 폰토스 왕국(기원전 301년~기원전 36년)이 건국되면서 비로소 이 지역의 영역이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영토적 통합은 주민들 사이의 연대감과 미트리다테스 1세가 세운 왕조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정신적 기반 위에 세워졌다.
왕국의 성립과 영토 확장
기원전 4세기 당시 수도는 아마시아(Amasya)였다. 왕국은 겉으로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사제 계급과 귀족 체제 등 페르시아식 통치 구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기원전 183년에는 시노페(Sinope)가 왕국에 병합되면서 새로운 수도로 거듭났다.
왕국이 최대 판도에 달했던 시기는 미트리다테스 6세 에우파토르(Mithridates VI Eupator)의 통치기였다. 이 시기 폰토스 왕국의 영토는 카파도키아에서 시작해 킬리키아, 콜키스, 그리고 아르메니아의 일부까지 뻗어 있었다.
몰락과 로마의 지배
그러나 미트리다테스 6세가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에게 패배하면서 왕국의 운명은 불투명해졌다. 해안 지역은 로마가 직접 통치하고, 내륙 지방은 속국 군주들이 다스리는 형태로 관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40년 이후에는 다시 현지 왕조의 손에 넘어가기도 했다.
로마 제국 시대에 들어서면 왕국의 서부 지역이 두 구역으로 나뉘어 병합되었다. 하나는 세바스토폴리스-아마시아 지역이었고, 다른 하나는 코마나(Comana) 지역이었다. 서기 64년에는 폰토스 전역이 로마에 완전히 병합되었으며, 아마시아,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 트라페주스(Trapezus, 트레비존드)라는 세 개의 중심 도시를 두게 되었다.
경제와 교역의 중심지
경제적으로 광산과 국유 재산 외에 세금이 군주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다만 내륙 지방의 가난한 백성들이 낸 세금은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대신 해안 지역에는 상인, 장인, 어부, 조선업자들이 모여 활발한 경제 활동을 벌였다. 산에서 벌목한 목재는 가공되어 판매되었고, 포도나무, 올리브 나무, 과수 재배도 이루어졌다. 넓은 목초지에서는 말과 소가 사육되었다.
주요 교역 중심지는 그리스 도시인 아마시아와 아마스트리스(Amastris),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노페였다. 시노페는 부유하고 번영한 항구 도시로, 유명한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의 고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