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지배
로마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스파르타는 과거의 영광을 잃고 2류 도시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군사적·정치적 야망을 접은 스파르타는 자신들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 바로 '스파르타식 교육'에 집중했습니다.
이 독특하고 가혹한 교육 방식은 잔혹하고 기이한 의식을 갈구하는 '관광객'들을 끌어모았습니다. 전통적으로 아르테미스 오르티아(Artemis Orthia) 신전에서 의식적인 대결이 벌어졌는데, 로마 통치기에 이 의식은 '디아마스티고시스(diamastígôsis)'라 불리는 극단적인 형태로 변질되었습니다. 어린 소년들이 채찍질을 받다 목숨을 잃기도 했던 것입니다.
키케로는 『투스쿨루스 대화록(Tusculanes)』(II, 34)에서 이러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에 따르면 구경을 위해 몰려드는 인파가 너무 많아 신전 앞에 원형경기장을 지어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의식은 기독교 시대 4세기까지 관광객을 계속 끌어들였으며, 웅변가 리바니오스(Libanios)의 저술(Discourse, I, 23)에서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세의 스파르타
267년 헤룰리(Heruli)족의 침입으로 도시는 처음 약탈당했고, 395년에는 서고트 왕 알라리크 1세(Alaric I)가 도시를 파괴했습니다. 이후 라코니아 지역은 슬라브 부족들의 유린을 당했으며, 그들의 지배는 곧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의 지배로 이어졌습니다. 비잔티움인들은 고대 스파르타가 있던 자리에 '라케다이몬(Lacedaemon)'이라는 새로운 도시를 세웠습니다.
1249년에는 십자군이 타이게토스(Taygetos) 산 능선 위, 고대 도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미스트라(Mistra)'라는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이곳은 훗날 모레아 전제공국의 수도로서 크게 번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