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육군 외국군단, 이른바 외인부대(Légion étrangère)는 프랑스 군사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상징적인 부대 중 하나입니다.
외인부대의 창설 배경
프랑스가 알제리를 정복한 이후, 프랑스에 거주하던 수많은 외국인들이 프랑스군에 복무하고자 하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루이필리프 국왕은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여 1831년 3월 10일 칙령을 반포함으로써 외인부대를 공식 창설했습니다. 이는 일종의 구체제(Ancien Régime) 시절 스위스 근위대의 전통을 계승하는 조치였습니다.
조직 구조와 복무 규정
외인부대는 일반 보병 연대와 동일한 편제를 갖추고 있으며, 대대 단위로 나뉘고 대대의 수는 병력 규모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1867년에는 하나의 연대로 개편되어 '외국연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제3공화국 시기인 1884년에는 대대 수가 4개로, 1891년에는 5개로 확대되었으며, 그 사이 부대는 원래의 '외인부대'라는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원칙적으로 프랑스인의 입대는 허용되지 않으며, 간부 및 관리 요원을 모집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다만 현역 복무를 마친 뒤 재입대를 원하지 않는 프랑스 병사는, 군에서 제적될 사유가 없다는 조건 하에 외인부대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의 경우 복무 기간은 5년이며, 입대 연령 제한은 18세에서 40세 사이입니다. 부대의 지휘와 감독은 프랑스 장교들이 담당하지만, 외국 출신 장교도 원래 계급과 동등한 자격으로 복무할 수 있습니다.
영광의 전장: 카메론에서 비르하케임까지
1835년에는 부대의 일부가 스페인 국왕의 요청으로 카를리스트 운동과의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이후 다른 부대들은 알제리의 모든 주요 작전에 참여했고, 제2제정 시기에는 크림 전쟁과 이탈리아 전역에도 참전했습니다. 멕시코 원정 중이던 1863년 4월 30일, 외인부대 분견대는 카메론(Camerone) 전투에서 용맹하게 싸워 부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무공을 세웠습니다.
외인부대의 역사는 곧 프랑스군의 위대한 무공의 역사입니다. 외인부대원들의 분견대는 언제나 선봉 돌격 부대로 투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인부대 군기에는 인도차이나와 모로코 전역의 명예가 새겨져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인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약 4,000명이 전사했고, 제2차 세계대전인 1939년부터 1945년 사이에는 그 두 배에 달하는 희생자를 냈습니다.
전설과 신화: 노란 케피와 사하라의 노래
녹색과 붉은색 깃발, 대원들이 쓰던 흰 케피(cap) 덕분에 외인부대는 프랑스군에서 가장 대중적인 부대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간기에는 사하라 사막을 배경으로 한 노래와 영화를 통해 이 용감한 전사들의 미덕이 찬양받았습니다. 과거가 불투명하고 신비로운, 잘못을 잊거나 속죄하기 위해 찾아온 남자들에게 전설이 따라붙었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모험 정신이 이들을 끌어당겼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해방, 그리고 그 이후
1940년 외인부대는 나르비크(Narvik)에서 활약했고, 그해 6월 많은 대원들이 자유 프랑스 진영으로 넘어갔습니다. 1941년에는 에리트레아에서, 이듬해에는 리비아 사막의 비르하케임(Bir Hakeim) 전투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3개 반여단(demi-brigade)으로 편성된 외인부대는 드라트르 드 타시니(de Lattre de Tassigny) 장군의 제1군 예하에서 프로방스부터 알자스까지, 본토 해방 전역에 참여했습니다.
그 후 외인부대는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 시기 외국인 낙하산 연대들이 신설되었습니다. 1958년 5월 알제 쿠데타 기도와 1961년 4월의 쿠데타 시도 때 반란 장군들은 부분적으로 이 부대들에서 돌격 병력을 충원했습니다. 이러한 사건 이후 외인부대는 시디벨아베스(Sidi-bel-Abbès)에 있던 주둔지를 부슈뒤론(Bouches-du-Rhône) 주의 오바뉴(Aubagne)로 옮겼습니다.
병력의 일부는 코르시카에 주둔하고 있으며, 다른 분견대들은 특히 태평양 지역의 해외 거점에서 복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외인부대는 프랑스군을 대표하는 상징적 부대로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