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울필라(Wulfila): 고트 문자를 창제하고 성경을 번역한 '고트족의 사도'

울필라의 출생과 배경

울필라(Wulfila, 흔히 Ulfilas로 표기되며, 311년경 출생 ~ 383년경 사망)는 그리스계, 더 정확히는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 인물이다.

그의 조부모는 헬레니즘화된 카파도키아인들로, 3세기 말 소아시아를 덮친 고트족의 약탈을 직접 겪으며 포로로 잡혔다. 울필라는 바로 이 고트족의 땅, 즉 흑해 연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언어 교육과 주교 서품

울필라는 어린 시절부터 지배층인 고트족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익혔으며, 동시에 그리스어도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는 아마도 성직자의 길을 염두에 두고 그리스어 문자를 배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뛰어난 재능은 그를 자신이 속하게 된 고트족의 대표로서 동로마 제국에 파견되는 외교관의 자리까지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아리우스파 주교였던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 of Nicomedia)와 접촉하게 되었고, 에우세비우스는 341년 울필라를 주교로 서품했다.

고트어 성경 번역 사업

고트족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울필라는 결정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직접 새로운 알파벳, 즉 고트 문자를 창제하고, 이를 사용해 성경 전체를 고트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번역본은 게르만 계열 언어 최초의 성경으로 평가받는다.

이렇게 '야만족의 사도'가 된 그는 콘스탄티노플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특히 360년에는 아리우스주의를 다루는 종교회의에 참석했으며, 383년에는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 황제의 니케아 신경 강화 정책에 맞서 아리우스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다시 콘스탄티노플로 향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아리우스주의 개종의 경위

울필라가 아리우스주의로 개종하게 된 정확한 계기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당시 이 신학 입장은 콘스탄티우스(Constantius) 황제 치세에 제국의 지배적인 종류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어느 쪽이든 울필라는 생애의 끝까지 열성적인 아리우스파 신자였으며, 바로 그의 영향 아래 고트족이, 그리고 이후 다른 동게르만 계열 민족들이 이 형태의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역사적 의의

결국 간접적이기는 하나, 5세기부터 7세기에 걸쳐 서유럽에서 나타난 아리우스주의의 재유행은 울필라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트족을 시작으로 반달족(Vandals), 부르군트족(Burgundians), 그리고 이후에는 롬바르드족(Lombards)에 이르기까지, 게르만 왕국들을 통해 퍼진 아리우스주의의 뿌리에는 울필라의 선교와 번역 사업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