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알레만니(Alemanni): 로마 제국과 맞선 게르만 부족 연합의 역사

알레만니(Alamanni, 독일어: Alle Männer, '모든 사람들'이라는 뜻)는 게르만 부족들의 연합 세력으로, 처음에는 엘베 강 중·하류 유역에 자리 잡았다가 이후 마인(Main) 강 일대로 이동하였다. 이들은 기원후 213년 역사가 디오 카시우스(Dio Cassius)의 기록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알레만니는 라인강 우안 북쪽에 자리한 또 다른 게르만 집단인 프랑크족(Franken, '자유로운 자들'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과 오랜 기간 경쟁 관계에 있었다. '알레만 왕국'이라는 명칭은 269년부터 기록에 등장하는 알레만니의 영토를 가리킨다.

알레만니의 기원

역사가 아시니우스 콰드라투스(Asinius Quadratus)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이들의 이름은 여러 부족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임을 잘 보여준다. 다만 고대 헤룬두리(Hermunduri)족이 이 민족의 핵심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점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알레만니를 구성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부족은 다음과 같다.

  • 헤룬두리(Hermunduri, 헤르미온 계열)
  • 유퉁기(Juthungi)
  • 부키노반테스(Bucinobantes)
  • 렌티엔세스(Lentienses)
  • 콰디(Quadi), 마르코만니(Marcomanni), 셈노네스(Semnones)
  • 아르말라우시(Armalausi)
  • 투턴족(Teutons)
  • 4세기부터는 수에비(Suebi)에 대한 언급도 나타난다.

헤룬두리족은 원래 수에비 계열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알레만니와 수에비라는 이름이 사실상 동의어처럼 사용되기도 했으나, 수에비의 일부는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하여 6세기까지 존속한 독립 왕국을 세웠다.

로마 제국과의 충돌

알레만니는 로마 제국과 끊임없이 충돌해 온 민족이었다. 초기에는 라에티아(Rhaetia) 속주 북방에 위치하여 3세기 중반까지 로마군에 의해 저지되었지만, 이후 약 두 세기에 걸친 충돌 속에서 서쪽으로 점차 진출해 스위스 일부, 바덴 지방, 알자스에 해당하는 영토에 영구적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로마화되어 있던 이 지역들의 게르만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258~259년의 대약탈

258년, 알레만니는 로마 제국을 상대로 가장 파괴적이고 깊숙한 약탈을 감행한다. 이들은 라에티아를 침공하고 데쿠마테스 농지(Agri Decumates)의 리메스 요새들을 파괴한 뒤 헬베티아까지 진출해 아방슈(Avenches)를 약탈했다. 여러 무리가 론 계곡을 따라 내려가 아를(Arles) 교외를 유린했으며, 루그두눔(Lugdunum)이나 오툉(Autun)처럼 방비가 튼튼한 대도시는 피해 갔다. 일부는 스페인의 타라고나(Tarragona)를 공격했고, 또 다른 무리는 이탈리아 북부로 넘어가 로마로 진군하기도 했다. 259년 봄, 황제 갈리에누스(Gallienus)가 마침내 밀라노 인근에서 이들을 격파했지만, 데쿠마테스 농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알레만니는 이 돌출부에 자리 잡았고, 이곳에서 라인강이나 도나우강을 손쉽게 건너 갈리아 동부, 라에티아, 이탈리아 북부를 위협할 수 있었다.

268년 침공과 가르다 호 전투

268년 알레만니는 이탈리아 북부로 대규모 침공을 개시했다. 당시 로마는 서고트족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상당수 병력을 철수시킨 상태였다. 초여름, 황제 갈리에누스가 이들의 이탈리아 진입을 막아섰지만 곧바로 고트족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 같은 해 9월 나이수스(Naissus) 전투에서 로마가 고트족을 물리치자, 갈리에누스의 후계자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Claudius Gothicus)는 북방으로 돌아와 포(Po) 강 이북의 이탈리아 거의 전역을 점령하려던 알레만니와 맞서야 했다.

평화로운 철수 협상이 번번이 결렬되자, 268년 11월 클라우디우스는 알레만니를 가르다 호(Lake Garda) 전투로 몰아붙였다. 패배한 알레만니는 게르마니아로 후퇴했고, 이후 오랫동안 로마에 뚜렷한 위협이 되지 못했다.

스트라스부르 전투와 4세기의 항쟁

로마와의 전투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357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벌어진 아르겐토라툼(Argentoratum) 전투다. 훗날 황제가 되는 율리아누스(Julian)가 중장기병의 결정적 돌격으로 알레만니를 대파했고, 그들의 왕 크노도마리우스(Chnodomarius)는 포로로 사로잡혔다.

366년 1월 2일, 알레만니는 얼어붙은 라인강을 대규모로 건너 로마 제국 영내로 침입했다.

프랑크 왕국에의 귀속

5세기 초, 알레만니는 라인강을 넘어 현재의 알자스와 스위스 대부분 지역을 정복하고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왕국은 496년 클로비스 1세(Clovis I)가 톨비아크(Tolbiac)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끝을 맞이했다. 알레만니는 프랑크족의 종주권을 받아들였고, 그들의 영토는 이후 알레만니아 공작령(Duchy of Alemania)으로 편입되었다.

주요 연대기

  • 213년: 알레만니가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Germania Superior)를 공격하는 세력으로 처음 등장. 카라칼라가 이들을 크게 격파하여 20년간 위축시킨다.
  • 233년: 병력이 동방에 투입된 틈을 타 리메스를 돌파. 동방에서 귀환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는 전투 대신 협상을 선택하고, 이에 분노한 병사들에게 235년 살해된 뒤 막시무스 트락스가 즉위. 막시무스는 알레만니의 영토를 역공하여 완전히 격파한다.
  • 253년: 프랑크족과 알레만니가 갈리아를 침공.
  • 258~259년: 알레만니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약탈. 갈리에누스가 밀라노 인근에서 격파했으나 데쿠마테스 농지를 내주어야 했다.
  • 268년: 알레만니가 라에티아와 이탈리아를 공격.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밀라노 인근과 가르다 호에서 기병으로 격파.
  • 275년: 갈리아가 프랑크족과 알레만니에게 약탈당함.
  • 277년: 로마 황제 프로부스(Probus)가 갈리아를 탈환하고 알레만니를 라인강과 도나우강 사이로 몰아냄.
  • 352년: 알레만니와 프랑크족이 로마군을 격파하고 40개 도시를 함락, 모젤강과 라인강 사이에 정착.
  • 357년: 율리아누스가 스트라스부르에서 알레만니를 격파하고 라인강 너머로 몰아냄.
  • 360년: 율리아누스가 프랑크족과 알레만니를 복속시키고 라인 국경을 회복.
  • 365년: 알레만니가 언 라인강을 건너 샬롱쉬르마른(Châlons-sur-Marne)까지 진출.
  • 368년: 트리어에 주둔한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라인 국경에서 알레만니를 격파.
  • 374년: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알레만니와 조약(foedus)을 체결하여 라인강 서안 정착을 허용.
  • 378년: 알레만니가 알자스를 침공.
  • 396년: 로마가 라인 국경 방어를 위해 프랑크족과 알레만니를 용병으로 고용.
  • 496년: 프랑크족이 네카어강에서 알레만니를 격파하여 마인-네카어 지역을 할양받음.
  • 496년: 클로비스 1세가 라인 프랑크족과 동맹을 맺고 라인강의 톨비아크 전투에서 알레만니를 격파.
  • 709년: 프랑크족과 알레만니 간 전쟁 발발 (712년 종료).
  • 712년: 프랑크족과 알레만니 간의 전쟁이 종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