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디엔비엔푸 전투: 재앙이 다가오다

디엔비엔푸 전투: 재앙이 다가오다
외인부대가 방어하던 진지가 불과 6시간 만에 함락되자, 하노이의 프랑스 총사령부는 크게 동요했습니다. 이것은 디엔비엔푸(Diên Biên Phû) 전투의 향방을 결정지을 연쇄적 위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가브리엘 거점의 함락

14일, 수비군을 증원하기 위해 베트남인 공수부대 제5대대가 상공에서 투하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날 저녁 6시, 외인부대 소속 120mm 박격포 8문의 화력 지원을 받던 알제리 보병들이 점거한 '가브리엘(Gabrielle)' 거점에 대한 베트민의 포격이 시작되었습니다.

필사적인 밤샘 전투가 이어지는 동안 베트민 8개 대대가 이 단일 대대를 상대로 총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에는 단 하나의 진지만이 프랑스군의 손에 남아 있었습니다. 다행히 외인부대 2개 중대와 베트남 공수대대 1개 대대가 전차 6대의 지원을 받아 역습을 감행했고, 그 덕분에 '가브리엘'의 생존자 150명을 간신히 구출해낼 수 있었습니다.

일시적인 정체와 내부의 균열

그 후 공세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습니다. 양측 모두 병력을 재편성하고 새로운 진지를 구축했는데, 프랑스군은 방어와 생존을 위해, 베트민은 적을 조여 들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16일, 타이족으로 구성된 제3대대 병력들이 '안마리(Anne-Marie)' 진지를 스스로 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시에 수백 명의 북아프리카 출신 병사들과 베트남인들이 대열을 이탈해 '내부 탈영병'이 되었고, 남윤(Nam Yum) 강 기슭에 직접 파 놓은 지하 은신처로 숨어버렸습니다. 요새 안팎에서 균열이 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증원 투입과 지휘부의 변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의 공격과 탈영으로 인한 손실에도, 증원 부대들은 계속해서 수비진에 합류했습니다. 3월 16일부터 27일까지, 전설적인 마르셀 비자르(Marcel Bigeard) 중령이 지휘하는 식민지 공수부대 제6대대, 야전병원, 포병 분견대, 그리고 인생 첫 낙하를 경험하게 될 자원병 400명이 디엔비엔푸 상공에서 투하되었습니다.

4월 초에는 브레시냐크(Brechignac) 중령이 지휘하는 외인부대 제2대대 소속 2개 중대가 뒤를 이었고, 이어서 기로(Guiraud) 중령이 이끄는 식민지 공수부대 제8대대와 제5대대도 도착했습니다. 이로써 계곡에는 총 7개 공수대대가 집결하게 되었습니다.

전황이 악화되면서 실질적인 지휘권은 공수장교들의 손으로 넘어갔고, 그 중심에는랑글레(Langlais) 중령이 서 있었습니다. 그와 명목상 사령관인 드 카스트리(de Castries) 대령의 관계는 늘 원만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묻곤 했습니다. 과연 세련된 기병 장교보다 강인한 브르타뉴 출신 낙하산 부대 지휘관이 이 절체절명의 전장을 이끌기에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