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아 발바 카에소니아란 누구인가
아티아 발바 카에소니아(기원전 85년~기원전 43년)는 흔히 '아티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인물로, 마케도니아 총독이자 로마 원로원 의원이었던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의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로마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의 어머니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첫 번째 결혼과 자녀들
아티아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사이에는 두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딸은 옥타비아, 막내아들은 옥타비아누스였는데, 바로 이 옥타비아누스가 훗날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즉 아우구스투스가 됩니다.
그러나 기원전 59년,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는 집정관에 당선된 뒤 로마로 향하던 도중 세상을 떠나며 가장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재혼과 새로운 가족 관계
이후 아티아는 기원전 56년 집정관을 지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와 재혼했습니다. 필리푸스는 의붓딸인 옥타비아를 원로원 의원이자 훗날 집정관이 되는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미노르에게 시집보내 주며 가족의 결속을 다졌습니다.
이상적인 로마 여성으로서의 모습
아티아는 독실한 신앙심과 신중한 성품을 지닌 전형적인 로마의 어머니였습니다. 실제로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녀를 이상적인 로마 여성, 즉 '모테르 로마나'의 본보기로 평가했습니다.
카이사르의 상속과 아들의 반대
흥미롭게도 아티아는 아들 옥타비아누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상속자가 되는 일에 대해 정당성을 의심했습니다. 그녀는 거대한 권력과 부담이 따를 유산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아들을 만류하기도 했지만, 옥타비아누스의 선택은 달랐고, 그 결과 로마 제국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죽음과 장례
아티아는 기원전 43년, 아들의 첫 번째 집정관 임기 중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당대 최고 수준의 예우를 갖추어 깊은 효성을 드러냈습니다. 한편 남편 필리푸스는 훗날 아티아의 자매 중 한 명과 재혼한 것으로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