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로마 공화주의자

카이사르에게 치명타를 낸 로마 공화주의자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 기원전 85년경~기원전 42년)는 로마 공화정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격렬한 공화주의자였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정부였던 세르빌리아의 아들로,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일격을 가했다. 이때 카이사르는 그리스어로 "네까지 나를 배신하는가, 내 아들아?"(Kaì sú, téknon?)라고 탄식했다고 전해지며, 라틴어로는 "너도냐, 브루투스여, 내 아들아?"(Tu quoque, Brute, fili mihi?)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문과 혈통

브루투스는 자신이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기원전 509년 루크레티아 사건을 계기로 로마의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를 축출하고 로마 공화국을 건립한 인물이다. 브루투스는 마리우스파에 속했던 아버지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우티카의 카토의 자매인 어머니 세르빌리아 사이에서 태어나 기원전 85년경 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전과 카이사르와의 관계

브루투스는 내전기에 폼페이우스 진영에 가담하여 기원전 48년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싸웠다. 그를 깊이 아꼈던 카이사르는, 심지어 자신이 브루투스의 친부라는 소문이 있었을 만큼, 승리 후 그를 곁으로 불러들여 각별한 은혜를 베풀었다. 그러나 이러한 총애에도 불구하고 브루투스는 독재자에 대항하는 음모에 가담했다. 암살 모의자들은 카이사르를 왕위와 왕권을 탐내는 인물로 묘사함으로써, 브루투스를 가문의 반독재 전통을 잇는 충실한 후계자로 부각시켰다.

3월 15일의 암살

숨을 거두기 직전 카이사르는 음모꾼들 사이에서 브루투스를 발견하고 "네까지, 내 아들인가?"라고 외쳤다고 한다. 암살 이후 브루투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추격을 피해 카시우스와 합류했고, 마케도니아 필리피 평원에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연합군에 맞서 결전을 벌였다.

필리피 전투와 최후

브루투스는 패배하였고, 기원전 42년 10월 23일 카시우스와 함께 절망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편 당시 전해진 그의 절망의 말들은 확실한 근거가 없다는 견해도 있으며, "도덕은 결국 허울뿐인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소적인 평가도 함께 전해진다.

학문과 철학에 대한 열정

브루투스는 문학과 철학을 깊이 탐구했으며, 특히 스토아 학파의 철학을 받아들였다. 그는 우티카의 카토를 찬양하는 글을 비롯한 여러 저술을 남겼으나 후대에 전해지지 못했고, 오직 키케로와 아티쿠스에게 보낸 몇 통의 서간만이 현존한다. 키케로는 자신의 저서 『명연설가론』(De claris oratoribus)을 그에게 헌정했으며, 플루타르코스는 그의 생애를 기록으로 남겨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