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위대한 웅변가 키케로의 동생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로마 최고의 웅변가로 이름난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친동생입니다. 그는 기원전 102년 로마 인근 도시인 아르피눔에서 태어났으며, 기원전 4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명령을 받은 제2차 삼두정치의 자객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부유한 아버지는 두 아들이 로마, 아테네, 그리고 아마도 로도스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그는 형의 친구였던 아티쿠스의 누이 폼포니아와 결혼했으나, 훗날 이혼하게 됩니다.

정치 경력과 최후

그는 기원전 66년 조영관(aedile), 기원전 62년 법무관(praetor)을 역임했습니다. 갈리아 전쟁 기간인 기원전 54년부터 52년까지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부관(레가투스)으로 종군했고, 기원전 51년에는 형 키케로의 부관으로 활동했습니다. 내전이 발발하자 폼페이우스 진영에 섰지만, 이후 카이사르의 사면을 받아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적으로 지목되면서 운명이 기울기 시작합니다. 안토니우스의 보복을 피해 투스쿨룸에서 도망친 뒤 고향 아르피눔으로 은신했지만, 한 농부의 밀고로 신분이 드러났습니다. 고문당하고 있는 아들을 구하려고 나섰다가 붙잡혔고, 부자는 함께 끌려가 기원전 43년 제2차 삼두정치 세력에 의해 처형당했습니다.

저술 활동

작가로서도 활동적인 면모를 보였는데, 대표작으로는 선거 운동 매뉴얼 『집정관 지망에 관하여(De petitione consulatus)』가 있습니다. 이 책은 때때로 형 키케로의 저작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또한 그리스풍 비극 네 편을 집필했는데, 그중 『티로아스(Tiroas)』, 『에리고네(Erigones)』, 『엘렉트라(Electra)』 세 편의 제목이 전해지지만 작품은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카이사르의 브리타니아 제2차 원정을 노래한 시 몇 수, 비서 티로에게 보낸 세 통의 편지, 그리고 형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