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루스트(Gaius Sallustius Crispus, 기원전 86년~기원전 35년)는 로마의 정치가, 군인이자 역사가입니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측근으로 활동했으며, 말년에는 역사서 집필에 몰두하여 로마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생애
살루스트는 사비니 지방의 아미테르눔(Amiternum)에서 평민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기원전 55년 재무관(콰에스토르), 기원전 52년 호민관으로 선출된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지지를 받던 민중파(포풀라레스)를 지지하며, 티투스 안니우스 밀로와 키케로가 이끄는 원로원 귀족파(옵티마테스)에 맞섰습니다. 그러나 민중파 지도자 클로디우스 풀케르를 암살한 자들의 재판 과정에서 살루스트는 기원전 50년 부도덕을 이유로 로마 원로원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친우였던 그는 일리리아에서 로마 함대 지휘를 맡았지만, 기원전 49년 폼페이우스파에게 패배했습니다.
이후 다시 재무관에 임명되어 원로원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카이사르는 군단이 반란을 일으킨 캄파니아 지역의 진압 지휘권을 그에게 맡겼으나, 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정치 무대에서는 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기원전 47년 법무관(프라이토르)으로 선출된 그는 카이사르를 따라 아프리카 원정에 참여했고,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새로 설립된 로마 속주 누미디아의 총독(기원전 46년~45년)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다만 그는 이 직책을 통해 속주민들을 착취하며 상당한 개인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로마로 돌아온 후 공금 횡령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유죄 판결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재산으로 아름다운 정원인 '호르티 살루스티아니(Horti Sallustiani)'를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가 암살되자, 살루스트는 정치 생활에서 물러나 역사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저술 활동
살루스트는 세 편의 대표작을 남겼으며, 그중 두 작품만이 온전한 형태로 전해집니다.
카틸리나의 음모(Bellum Catilinae)
키케로가 고발한 카틸리나의 권력 장악 음모 사건(기원전 63년)을 다룬 작품으로,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적 부패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유구르타 전쟁(Bellum Iugurthinum)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로마와 누미디아 왕 유구르타 간의 전쟁을 기록한 역사서입니다.
역사(Historiae)
이 작품은 매우 불완전한 상태로 전해집니다. 술라의 죽음(기원전 78년)부터 폼페이우스가 해적들을 격파할 때까지(기원전 67년)의 로마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프랑스 부르고뉴 고등법원장 샤를 드 브로스(Charles de Brosses)가 이 책의 중요한 복원 작업을 수행했으며, 그 결과물은 1777년 디종의 프랑탱 출판사를 통해 『살루스트의 로마 공화국사 — 제7세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라틴어 원본을 부분적으로 번역하고, 소실된 권의 단편들을 진정한 또는 가장 개연성 있는 순서대로 재배열하여 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