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카 하마타란 무엇인가?
로리카(Lorica)는 고대 로마에서 신체를 보호하는 방어구, 즉 흔히 말하는 갑옷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그중 '하마타(Hamata)'는 고리 사슬 갑옷(chain mail)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고리 하나가 다른 네 개의 고리와 연결되는 이른바 '4합 1(4-in-1)' 방식으로 엮었으며, 보리알 모양의 리벳으로 고리를 잠가 완성했습니다.

켈트족에게서 도입된 사슬 갑옷
기원전 약 350년경 로마가 함락되는 참사 이후 라틴 동맹군은 군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청동 흉갑은 폐기되고, 적인 켈트족이 사용하던 고리 사슬 갑옷이 새로운 방어구로 채택되었습니다.
이후 그리스와 레반트(지중해 근동 지역)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로리카 하마타의 여밈 구조는 그리스군이 '린넨 갑옷'(리노토락스, linothorax)에 사용하던 방식을 본떴습니다. 이 방식은 U자형 부품을 옷자락에 추가하는 것으로, U자의 단단한 면은 등쪽에 고정하고 두 팔 부분이 어깨 위를 지나 끝단에서 고정되는 구조였습니다.
어깨 받침의 문제점과 해결
그러나 사슬 갑옷의 그물 직물은 그리스인이 사용하던 두꺼운 아마포보다 훨씬 유연했기 때문에, 어깨 받침이 제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팔 아래로 흘러내렸습니다. 결국 어깨가 방어되지 않았고, 로리카 자체도 몸을 따라 흘러내려 팔 움직임을 방해하게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깨 받침을 단단히 붙잡아 주는 측면 클립이 추가되었습니다. 또한 목선 부분에는 천이나 가죽 조각으로 안감을 댔는데, 이 보강재는 목선 안쪽을 겹으로 덮고 위쪽으로 2~3cm 접어 내려, 안감과 그물 직물을 함께 꿰매어 고정했습니다.
목 부분 고정 방식의 진화
- 처음에는 목선을 닫아두던 끈이 리벳으로 교체되었습니다.
- 이윽고 어깨 받침을 고정하던 끈 역시 금속 부품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부품은 가슴에 느슨하게 리벳으로 고정되었으며, 각 가지 끝이 갈고리로 끝나는 U자형(대략 각 가지가 S자를 이루고 S자 윗부분이 갈고리가 되는 형태)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 가지의 갈고리는 어깨 받침에 리벳으로 박힌 단추에 걸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5세기까지 로리카 하마타의 기본형으로 유지되었습니다. 5세기부터는 점차 쓰이지 않게 되었고, 훨씬 간단하고 무엇보다 저렴한 브로그네(broigne)로 대체되었습니다.
길이와 소매의 변화
카이사르 시대부터 폐기될 때까지 로리카 하마타의 길이는 계속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허리 바로 아래까지 닿았다가 거의 무릎까지 내려오기도 했고, 이후 다시 짧아졌습니다.
소매 길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초기 형태는 소매가 없었으나, 이후 몇 센티미터 길이의 짧은 소매가 추가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유행과 지역에 따라 소매 길이가 달라졌는데, 시리아에 주둔하던 일부 군단병들은 긴 소매를 채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기 1세기 말에 이르러 어깨 받침을 봉(bar)으로 고정하는 방식이 널리 보급되었고, 같은 시기에 어깨 받침의 안감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일부 기병들은 그리스식 목 부분을 로리카 세그멘타타의 어깨 받침으로 교체하기도 했습니다.
이 방어구가 사용된 전 기간에 걸쳐 그물 직물은 주로 4합 1(4:1) 방식으로 엮인 것으로 보입니다.
로리카 하마타에 더해진 추가 장비
군단병들은 취향과 당면한 위험에 따라 로리카에 다양한 추가 장비를 활용했습니다.
더운 지역에서는 사슬 갑옷 위에 얇은 튜닉을 입는 겉옷(surcoat)이 착용되었으며, 이는 로마 근동 전역에서 확인됩니다. 반면 갈리아 북부와 게르만 국경에서는 겨울철에 두꺼운 튜닉을 겹쳐 입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고정식 또는 탈착식 사슬 소매도 존재했으며, 팔뿐 아니라 다리를 보호하는 데도 쓰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식 정강이 보호구인 크네미데스(cnemides)도 때때로 사용되었습니다. 일부 부조에는 목선 앞부분을 닫는 금속판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한 종류를 불문하고 로리카와 함께 스카프가 거의 항상 착용되었습니다. 스카프는 갑옷과의 마찰로부터 목을 보호하는 동시에, 큰 목선으로 인해 노출된 목을 적의 무기로부터 지켜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속옷 갑옷: 수바르말리스
아우구스투스 치세부터는 '수바르말리스(subarmalis)' 또는 '토라코마쿠스(thoracomachus)'라 불리는 솜 갑옷(gambeson)을 로리카 하마타 아래에 입기도 했습니다. 이 갑옷은 호화롭게 장식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주로 계급의 상징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거의 독점적으로 옵티오(optio)와 데쿠리오(decurion)가 착용했습니다.
제작 공정과 소요 시간
로리카 하마타를 구성하는 고리는 철사로 만들어졌습니다. 최소한 8세기 이후에는 철괴를 구멍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다이(금형)에 여러 번 통과시켜 철사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로마 시대에는 구멍이 하나뿐인 다이에 괴철을 통과시켜 최종 철사를 한 번에 뽑아냈습니다. 단일 다이 방식은 훨씬 어렵고 까다로워 통과 중에 철사가 끊어지곤 했으므로, 철사는 값비싸고 생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흥미롭게도 아우구스투스 즉위 이전의 내전(카이사르 사후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투스 간의 권력 다툼) 기간에 개발된 로리카 세그멘타타가 하마타의 제작 시간을 간접적으로 알려줍니다. 당시 연대기에 따르면 로리카 세그멘타타 한 벌을 만드는 데 약 70시간(준비된 철 기준)이 걸렸고, 로리카 하마타(철사 기준)를 만드는 데는 약 3배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엮임 방식의 다양성
가장 흔한 형태는 리벳으로 고정된 '클래식' 4:1 사슬 갑옷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철사 인발 기술이 알려져 있었지만 상당수 고리는 평평하게 눌린 형태였습니다. 당시 문헌과 고고학적 유물 모두 대부분의 고리가 리벳으로 고정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일부 사슬 갑옷은 닫히지 않은 고리로 만들어졌고, 또 어떤 것들은 용접 고리를 사용한 4:1 엮임의 변형으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 중심 고리가 잡고 있는 네 개의 고리는 리벳 대신 용접으로 처리되었고, 전체를 조립하는 중심 고리만 리벳으로 고정되었습니다.
장식: 부와 계급의 상징
로마 군단병들은 자신의 무기를 지나치게까지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행사용 무기에서 절정에 달했지만, 실전 무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강에서 발견된 일부 로리카 하마타 유물에서는 옷자락 하단을 두른 청동 고리 열이 한 줄 이상 확인되었습니다. 이 장식은 19~20세기 초 인도의 행진용 사슬 갑옷에 사용된 것과 흡사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많은 로리카는 가슴 클립으로 닫혔습니다. 이 클립은 S자형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고, 두 가지의 밑부분이 축으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U자 또는 일그러진 리라(lira) 형태를 이루었습니다. 이 평평한 면은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었는데, 일반적으로 각 가지 끝의 갈고리 부분은 뱀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클립 전체가 조각되고 금도금되기도 했습니다.
로마군에서 무기의 장식과 사치는 개인의 재산을 나타내는 동시에, 무엇보다도 계급의 표지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