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키루스 대왕, 낙타 부대로 리디아를 격파한 팀브레아 전투

전쟁사에 등장하는 동물들을 다룬 글들을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다. 말, 코끼리, 개처럼 흔한 사례부터 돼지, 고양이처럼 이색적인 경우까지 다양하다. 낙타 역시 그 중 하나지만, 오늘은 단순히 낙타가 동원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되었는지에 주목해 팀브레아 전투(Battle of Thymbra)를 조명하고자 한다.

두 강국의 충돌: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vs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

기원전 547년 말, 소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두 강자가 맞붙었다. 한쪽은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Croesus), 다른 한쪽은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2세(Cyrus the Great)였다.

부유한 왕국 리디아와 크로이소스

크로이소스는 메르나드 왕조의 5대 군주(기게스, 아르디스, 사디아테스, 알리아테스, 크로이소스)였다. 형 판탈레온과의 내전에서 승리해 왕위를 계승한 그는, 파크톨로스 강(현재 게디즈 강의 지류)에서 발견된 금을 이용해 주화를 대량 주조함으로써 국가의 부를 비약적으로 증대시켰다. '크로이소스'라는 이름이 오늘날에도 '거부(巨富)'의 대명사로 쓰일 정도다.

1965년 터키 서부의 고분에서 출토된 '리디아의 보물(카룬 보물/크로이소스 보물)'은 350점이 넘는 금은 공예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리디아의 부가 고대 세계에 끼친 충격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는 성경(출애굽기), 쿠란, 스트라본, 핀다로스, 디오 크리소스토모스, 헤로도토스 등 수많은 고대 사료에도 기록되어 있다.

소아시아의 패자, 리디아의 팽창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크로이소스는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주변 지역을 차례로 정복했다. 킬리키아와 리키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아나톨리아(소아시아)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프리기아, 뮈시아, 마리안디니, 칼리베, 파플라고니아, 트라키아, 티니아, 비티니아, 카리아, 이오니아(밀레토스 제외), 도리스, 아이올리스, 팜필리아 등 수많은 민족이 리디아에 복속되었다.

리디아의 위세는 그리스 현인들을 수도 사르디스로 불러모을 정도였다. 크로이소스는 그리스 문화를 숭배해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재건을 후원하고(나중에 헤로스트라토스가 방화로 태운 그 신전),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도 막대한 헌금을 바쳤다.

운명을 가른 델포이 신탁

하지만 델포이 신탁(피티아의 예언)이 비극의 단초가 되었다. "페르시아를 공격하면 대제국이 멸망하리라"는 신탁을 받은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제국이 아닌 페르시아가 멸망할 것이라 오판하고 전쟁을 결심한다. 결과적으로 멸망한 '대제국'은 바로 리디아 자신이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떠오르는 태양, 키루스 대왕

당시 아케메네스 제국은 키루스 2세 치하에서 급팽창 중이었다. 캄비세스 1세와 메디아 왕 아스티아게스의 딸 만다네 사이에서 태어난 키루스는 외가 쪽 혈통을 내세워 메디아와 리디아 양국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다. 그는 메디아의 수도 엑바타나를 점령하고 아스티아게스를 처형하며 메디아를 병합했다.

할리스 강을 사이에 둔 대치

메디아와 리디아의 국경은 할리스 강(현 크즈을르마크 강, 터키 최장 하천)이었다. 크로이소스는 아스티아게스의 매부(妹夫)였기에 혼인 동맹에 따른 의무로 개입할 수밖에 없었고, 델포이 신탁을 다시 물었다. 피티아는 "노새가 메디아를 다스릴 때 왕관을 잃으리라"고 답했는데, 크로이소스는 이를 불가능한 일로 여겨 안심했다. 하지만 키루스는 페르시아 왕족과 메디아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었기에, 신탁의 '노새'는 바로 그였다.

이에 리디아는 이집트, 바빌론, 킬리키아와 반(反)페르시아 연합을 결성하고, 펠로폰네소스에서 용병까지 모집해 대항했다.

팀브레아 전투: 낙타 기병의 전술적 승리

리디아군은 할리스 강을 건너 프테리아 시를 점령하고 주민을 노예로 삼았다. 키루스는 이오니아인들을 회유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정면 승부를 택했다. 페르시아군은 상당한 손실을 입으면서도 리디아군을 격퇴해 사르디스 방면으로 후퇴시켰다. 이 과정에서 낙타 기병이 사막 지형에서 적 기병보다 월등한 기동성을 보이며 전공을 세웠다.

겨울을 틈타 재기를 노린 크로이소스

크로이소스는 겨울이 오고 이집트(아흐모세)와 바빌론(나보니두스)의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고자 했다. 그는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용병을 해산시키는 대신 연합군을 규합해 페르시아군보다 3배 많은 병력을 모았다. 하지만 페르시아군은 추격을 늦추지 않고 팀브레아(현 하나이 테페)에서 조우전을 강요했다.

병력 구성과 전개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기록 기준)

크세노폰은 페르시아군 19만 6천 명(보병 2만, 아랍·아르메니아·메디아 연합군 4만 2천, 불사대 1만, 펠타스트 2만, 창병 2만, 전차 300대·공성탑 6기 탑승병 1천) 대 리디아 연합군 42만 명(리디아·바빌론·프리기아 등 6만, 이집트 보병 12만·전차 300대, 기병 6만 등)으로 기록한다. 수치는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리디아 측이 수적 우세였음은 분명하다.

낙타 300마리, 전세를 뒤집다

페르시아군은 보병과 공성탑을 중앙에, 전차와 기병을 양익에 배치한 방진(方陣)을 폈다. 기병 전력이 열세였기에, 보급용 낙타 300마리를 급히 전용해 기병대를 보강했다. 크테시아스의 페르시아기(Persica)에 따르면 낙타 한 마리당 두 기수가 등 뒤로 앉아 한 명은 고삐를, 다른 한 명은 전투를 담당했다.

말들을 혼란에 빠뜨린 낙타의 냄새

리디아의 정예 기병이 선제 공세로 페르시아 진영을 포위하려 들었으나, 기동 과정에서 본대와 간격이 벌어졌다. 페르시아군은 관측탑에서 이를 포착하고 궁사들을 집중 투입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여기에 낙타 부대가 측면에서 치고 들어가자, 낙타 특유의 냄새에 놀란 말들이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지며 리디아 기병대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이는 역대 여러 전투에서 검증된 '낙타 효과'였다.

기병대가 무너지자 페르시아 보병이 일제히 돌격, 리디아 주력군을 궤멸시켰다.

사르디스 함락과 크로이소스의 최후

패잔병과 함께 사르디스로 도주한 크로이소스는 성벽에 의지해 항전했으나, 2주 만에 '천연 요새'라 믿었던 가파른 성벽 구간이 방비 소홀로 뚫리며 함락되었다. 최근 발굴 조사에서도 당시 전투의 흔적이 확인된 바 있다.

이듬해 포로가 된 크로이소스의 최후는 설이 분분하다. 헤로도토스는 화형 직전 솔론을 부르짖는 그를 키루스가 측은히 여겨 살려주고 고문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반면 바킬리데스는 사면을 받고도 자결을 택했다고 하며, 나보니두스 연대기 역시 이 설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