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로 건설이 결정되면 노선의 확정은 측량사인 '아그리멘소레스(agrimenseures)' 또는 '멘소레스(mensores)'에게 위임되었습니다. 이들은 오랜 세월 검증된 몇 가지 측량 도구를 사용해 정밀한 측량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로마 측량사의 필수 도구
그로마(groma)
오늘날 측량기의 조상격인 그로마는 직각을 그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네 개의 팔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섯 개의 추(鉛錘)가 장착되어 있어, 중심점에서 수직선을 정확하게 그어낼 수 있었습니다.
코로바테스(chorobates)
거의 6미터에 달하는 대형 자로, 받침대에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고 상부에는 물이 담긴 홈이 파여 있었습니다. 수준 측정에 활용되어 높은 지대에도 일정한 경사를 부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디옵트라(dioptre)
추가 달린 삼각형 구조로 이루어진 기구로, 도로의 수평 작업에 사용되었습니다.
직선의 원칙과 지형에 대한 배려
일반적으로 로마 도로는 탁월한 직선성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습지대와 하천의 바로 인근은 최대한 피했으며, 횡단이 불가피한 경우 작은 개울은 여울로, 그 외에는 목재나 석재로 만든 교량으로 건넜습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웅장한 교량 유적 중 일부는 놀랍게도 현재의 도로망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복이 심한 지역에서는 편의와 안전을 위해 산기슭을 따라가는 경로를 택했으며, 많은 노선이 등고선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필요에 따라 급경사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측량이 끝나면 측량사들은 표식을 세워 노선을 표시했고, 준비 작업의 마지막 단계로 숲의 개간과 벌목이 진행되었습니다.
노반 시공의 실제
'세 층 구조' 신화의 탄생과 해체
1622년 니콜라 베르지에(Nicolas Bergier)가 『로마 제국 대로의 역사(Histoire des grands chemins de l'Empire romain)』를 출간하면서 로마 도로가 세 층 구조로 건설되었다는 가설이 처음 제기되었습니다. 이후 어디서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표준 공법이라는 생각은 수 세기 동안 반복해서 인용되었지만, 1934년 고고학자 알베르 그르니에(Albert Grenier)가 이것이 단지 관념에 불과함을 입증하며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는 이 가설이 라틴어 문헌을 통해 당시 알려져 있던 주택 바닥과 포장 공법을 본떠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동시다발적 시공과 다양한 노동력
일반적으로 건설은 서로 다른 거리의 독립적인 여러 구간에서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로마 도로에서 흔히 관찰되는 미세한 방향 변화가 발생한 것입니다. 군인들은 평시에 유용하게 쓸 일거리를 찾아 도로 건설에 동원되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구간들은 대개 군영 인근에 위치했습니다. 나머지 구간은 노예, 인근 지주들의 소작인, 포로들이 건설했습니다. 통념과 달리 로마 도로는 하나의 엄격한 표준을 따르지 않았으며, 오히려 품질과 유지 상태가 제각각인 구간들의 집합이었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지형에 따른 시공 방식
시공 방식은 지형 조건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평지에서는 땅을 파 내렸고, 높은 지대에서는 성토와 절토를 병행했으며, 움푹 파인 저지대에서는 성토와 옹벽 보강 공법이 적용되었습니다.
완성된 포장의 최종 단면은 볼록한 곡면을 이루어, 빗물이 도로 양쪽에 설치된 배수구로 쉽게 흘러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배수구는 때때로 도로 유지보수에 필요한 성토 재료의 공급원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차도는 군대, 마차, 승객용 차량의 전용 공간이었기 때문에, 보행자와 승마자를 위한 길이 차도 옆에 별도의 보조길로 마련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