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루이 14세의 첫 공식 정부, 라발리에르 공작부인의 찬란하고도 슬픈 인생

라발리에르 공작부인(La Vallière), 누구인가

루이즈 드 라 본 르블랑(Louise de La Baume Le Blanc), 즉 라발리에르 공작부인은 1644년 프랑스 투르(Tours)에서 태어나 1710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인물로,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첫 번째 공식 정부(情婦)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국왕과의 운명적인 만남

그녀는 루이 14세의 제수이자 처제였던 잉글랜드의 앙리에트(Henriette d'Angleterre) 밑에서 시녀로 지내던 중 왕의 눈에 들었다. 생타냉 백작(comte de Saint-Aignan)의 몰래 한 도움이 계기가 되어, 유혹당한 그녀는 1661년 곧바로 왕의 정부가 되었다.

금발의 미인이었으나 걸음걸이가 다소 불편했던 그녀는, 무엇보다도 빛나는 아름다운 눈동자로 감미로운 매력을 발산하는 여인이었다. 왕을 알게 되자마자 그녀는 어떠한 개인적 야심도 없이 오직 사랑만으로 왕을 깊이 섬겼다.

사랑의 결실과 어린 자녀들의 비극

첫 임신 중이던 시절, 왕은 그녀에게 팔레 로얄(Palais-Royal) 근처의 저택 '브리옹 호텔(Hôtel de Brion)'을 선사했다. 흥미롭게도 이곳은 오늘날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Française) 극장이 자리한 바로 그 장소다.

두 사람 사이에는 네 명의 자녀가 태어났지만, 그중 살아남은 이는 단 둘이었다. 하나는 부르봉의 마리앤(Marie-Anne de Bourbon, 블루아 부인, 훗날 콩티 공비)이고, 다른 하나는 두 살 어린 나이에 프랑스 해군대장에 임명된 베르망두아 공작(Duc de Vermandois)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지 못하고 요절하며 또 다른 비극을 남겼다.

이별의 선물, 그리고 배신

1667년, 루이 14세는 그녀에게 생크리스토프(Saint-Christophe)와 부주르(Vaujours) 공작부인의 작위를 하사하고 딸의 신분을 적법화했다. 그러나 이 영광스러운 작위는 사실상 이별의 선물이었다.

며칠 뒤 왕은 몽테스팡 부인(Madame de Montespan)이라는 새로운 정부를 두게 된다. 그럼에도 왕은 새로운 간통 스캔들이 들통나는 것을 막기 위해 라발리에르를 일부러 궁정에 계속 머물게 했다. 그녀는 연인의 배신을 목격한 채 침묵 속에서 왕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수도원에서 찾은 마지막 평온

슬픔과 굴욕을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루이즈는 1671년 샤요(Chaillot) 수녀원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왕은 단호하게 콜베르(Colbert)를 보내 그녀에게 베르사유 복귀를 명령했다. 루이즈는 냉혹한 시선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궁정 앞에서 매일 당해야 하는 모욕적인 대우를 3년간 참아내며 버텼다.

드디어 1674년, 그녀는 파생자크 교외(Faubourg Saint-Jacques)의 가르멜회(Carmel) 수도원에서 마지막 안식처를 찾았고, 그곳에서 영구히 은거했다. 화려한 궁정의 사랑과 배신을 모두 경험한 그녀는 이후 36년간 수도원에서 조용히 남은 일생을 보내며 인생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