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로마의 비밀 이름을 폭로해 처형당한 호민관 퀸투스 발레리우스 소라누스, 그의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

퀸투스 발레리우스 소라누스(Quintus Valerius Soranus)는 기원전 140년경 로마 근교 라틴 지방의 자치도시 소라(Sora)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인이자 문법학자였던 그는 평민 호민관으로 선출되어 여러 저작을 남겼으나, 오늘날에는 유피테르 신에게 바치는 찬가의 몇 구절만이 전해집니다.

이 찬가에서 발레리우스는 유피테르를 남성적이면서 동시에 여성적인 존재로 묘사했는데, 이는 스토아학파와 오르페우스교 교리를 융합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덕분에 이 단편은 신화·종교 연구 분야에서 주목받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대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그를 '독자가 방대한 저작을 훑어볼 수 있도록 목차, 즉 색인을 제공한 최초의 작가'라고 기록했습니다. 색인이라는 유용한 도구를 직접 발명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적어도 그의 잃어버린 저작 일부가 상당히 방대한 분량이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로마의 비밀 이름을 폭로해 처형당한 호민관 퀸투스 발레리우스 소라누스, 그의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

그의 친구였던 키케로 역시 그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저작 『연설가에 관하여(De oratore)』에서 그는 발레리우스 소라누스를 '토가를 입은 이들 가운데 가장 교양 있는 인물'이라 칭찬할 만큼이었으며, 바로(Varro) 역시 자신의 저작에서 그를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퀸투스 발레리우스 소라누스는 기원전 88~87년과 82~81년의 내전에서 포퓰리스트 마리우스 편에 섰고, 결국 독재자가 된 귀족 술라에 맞섰습니다. 아마도 이 때문에 기원전 82년, 평민 호민관이던 그는 반역죄를 선고받고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서기 4세기 말에 집필된 세르비우스(Servius)의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주석(In Vergilii Aeneidem commentarii)』은 이에 대한 다른 버전을 전합니다. 세르비우스에 따르면, 퀸투스 발레리우스 소라누스는 '로마의 비밀 이름을 폭로했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비밀 이름을 폭로해 처형당한 호민관 퀸투스 발레리우스 소라누스, 그의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

실제로 발레리우스는 로마에서 도망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문학과 학문을 사랑하는 이른바 필롤로고스(philologos) Q. 발레리우스가, 마리우스파의 후원자이자 최근 암살된 시나의 동료 집정관 카르보와 함께 시칠리아로 향했다고 언급합니다. 카르보는 폼페이우스에 의해 처형되었으므로, 발레리우스 역시 처형되었을 개연성이 매우 큽니다.

플루타르코스와 대플리니우스 모두 발레리우스가 로마의 비밀 이름을 폭로한 대가로 응보를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에포프티데스(Epoptides, 수호신들)』라는 제목의 저작에서 이를 밝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로마의 비밀 이름을 폭로해 처형당한 호민관 퀸투스 발레리우스 소라누스, 그의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

서기 4세기 중반의 문법학자 솔리누스(Solinus) 역시 발레리우스 소라누스의 죽음을 여신 안게로나(Angerona)와 연결 짓습니다. 안게로나는 로마 신화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신 중 하나로, 출처마다 상충되고 혼란스러운 설명이 전해집니다. 그녀는 고뇌와 공포를 낳으면서도 동시에 이를 없앨 수 있는 존재, 무엇보다 침묵의 여신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게로나의 숭배는 도시의 비밀스럽고 신성한 이름이 부적절한 사람, 하물며 적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로마에 도입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마에는 정말 비밀 이름이 있었을까요? 만약 있었다면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었을까요? 검토된 사료에 따르면 로마에는 아마도 극소수에게만 공개된 난해하고 비밀스러운 이름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불행히도 어떤 사료도 그 실체를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안게로나가 도시의 수호 여신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이 곧 도시의 비밀 이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의 천재(守護神)는 익숙하게 '로마'로 불렸지만(화폐에도 그렇게 새겨졌습니다), 그녀의 정식 이름은 안게로나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녀의 석상에 입이 붕대로 감겨 있는 것은, 스스로 이름을 밝히지 않도록 하고 그녀를 섬기는 이들에게도 입 밖에 내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해석됩니다. 로마의 비밀 이름을 폭로해 처형당한 호민관 퀸투스 발레리우스 소라누스, 그의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

그녀의 이름은 12월 21일 축일을 주관한 사제단, 그리고 아마도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에게만 알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퀸투스 발레리우스가 평민 호민관으로서 이를 공개했다면, 그 역시 이름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발레리우스의 폭로는 정치적 항의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반역 행위로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이름을 공개함으로써 그는 도시의 수호신을 무방비 상태로 드러낸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비밀 이름을 아는 적이 신을 불러내어, 도시 수호자로서의 지위를 내려놓도록 설득하거나 강요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가정에 근거합니다. 실제로 로마인들은 도시를 포위할 때 상대 도시의 수호신에게 간청하며, 철수하면 로마에서 훨씬 더 나은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하곤 했습니다. 비밀 이름까지 알아낸다면 간청은 물론 신을 위협하고 강압하는 것까지 가능해집니다.

로마의 비밀 이름을 폭로해 처형당한 호민관 퀸투스 발레리우스 소라누스, 그의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

루이지 알폰시(Luigi Alfonsi)에 따르면, 발레리우스는 로마의 권력 독점을 무너뜨려 라틴인들이 그 이름을 빼앗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를 공개했을 수 있습니다. 반면 플리니우스처럼, 발레리우스 역시 그것을 단지 무의미한 미신으로 여겼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한 이론은 퀸투스 발레리우스 소라누스를 '히르피 소라니(hirpi Sorani, 소라노의 늑대들)', 즉 소락테 산의 소라노 신전 사제들과 연결합니다. 발레리우스는 페로니아(Feronia, 또는 안게로니아)라는 여성적 측면을 지닌 신을 모시던 이 신전의 사제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로마 수호신의 비밀 이름은 삼니움족의 늑대 신 히르푸스(hirpus, 또는 히르파)였고, 그래서 발레리우스가 그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히르푸스'라는 단어가 속라틴어로 흡수되지 않고, 루푸스(lupus) 대신 늑대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 이유도 설명됩니다. 이 단어에는 일종의 금기(taboo)가 깃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