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가을, 나토 연합 훈련의 시작
1992년 가을, 미국과 터키는 나토(NATO)의 대규모 연합 훈련인 '디스플레이 디터미네이션 1992(Exercise Display Determination 1992)'에 참가했습니다. 양국 해군 부대는 제러미 마이클 버다(Jeremy Michael Boorda) 미 해군 제독의 총지휘 아래 훈련에 임했습니다.
참가 병력은 두 진영으로 나뉘었습니다. 아군 역할을 맡은 '브라운 포스(Brown Force)'는 로페즈(Lopez) 미 해군 제독이 지휘했으며, 이 부대에는 항공모함 USS 사라토가(USS Saratoga)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적군 역할을 맡은 '그린 포스(Green Force)'에는 터키 구축함 무아베네트(Muavenet), 즉 구 미 해군 DM-33 그윈 호가 배속되었고, 지휘는 네덜란드 출신 크론(Kroon) 제독이 맡았습니다.
훈련 시나리오는 갈리폴리 반도 인근 사로스 만에서 브라운 포스가 상륙 작전을 감행하고, 그린 포스가 이를 저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함내 비상 훈련이 낳은 참극
그러던 1992년 9월 30일, 사라토가 함은 적의 공습 상황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RIM-7 시 스패로우(Sea Sparrow) 함대공 미사일 2발을 발사하기로 결정합니다. 함내에서 진행된 이 '내부 훈련'은 비상 상황으로 처리되어 함장의 명령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미사일 운용 요원들이 이것이 훈련인지 실제 위협인지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최고 경계 태세에 돌입시켰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미군 장교들은 서로 간의 조율에 실패했고, 주변 어느 누구에게도 상황을 통보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1992년 10월 1일 자정이 지난 직후, 시 스패로우 미사일 2발이 실제로 발사되었고 한 발은 터키 군함 무아베네트를 명중시켰습니다.
함장을 포함한 5명의 장교가 목숨을 잃다
미사일은 무아베네트 함의 함교와 전투지휘소를 직격해 두 곳 모두를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이 참사로 함장을 포함한 터키 장교 5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승선한 거의 모든 장교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두 번째 미사일은 함미 탄약고를 강타했으나 다행히 불발되어 더 큰 비극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 이후 정식 조사가 진행되었고, 사라토가 함장과 장교·선원 7명이 책임자로 지목되어 징계 처분이 권고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이 소식은 터키 사회에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호위함으로 갚은 책임, 그리고 끝나지 않은 배상 문제
미국은 터키에 녹스(Knox)급 호위함 USS 카포다노(USS Capodanno)를 인도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보상했습니다. 그러나 1994년 피해 함정 승무원 일부가 미국에 배상을 요청했음에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