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피트 하인: 스페인 보물선을 나포한 네덜란드의 해상 영웅

네덜란드 민담 속 해상 영웅, 피트 하인

피트 하인(Piet Hein, 1577년 11월 25일 ~ 1629년 6월 18일)은 네덜란드의 해군 장교이자 사략선 지휘관으로, 오늘날까지도 네덜란드 민담 속 영웅으로 회자되는 인물입니다.

갈리선 노예에서 선장까지

하인은 현재 로테르담의 한 구역인 델프스하번(Delfshaven)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십 대 시절부터 바다에 나가 뱃사람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20세 무렵에는 스페인군에게 포로로 잡혀 최소 4년간 갈리선(노를 젓는 배)의 노예로 끌려가는 비운을 겪었으나, 이후 스페인 포로와의 맞교환을 통해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동인도회사 입사와 정계 진출

1607년 하인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에 합류하여 아시아로 항해를 떠났고, 약 5년 후에는 선장 계급을 달성한 채 귀국했습니다. 이후 로테르담으로 이주하여 지방 정부의 일원으로서 정치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서인도 제도에서 펼친 '합법적 해적 행위'

1623년 부제독에 임명된 하인은 이듬해 네덜란드 서인도회사(WIC) 소속으로 서인도 제도로 출항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포르투갈령 살바도르(Salvador) 식민지를 점령하는 전과를 세웠으며, 1627년에는 설탕을 실은 포르투갈 상선 다수를 나포했습니다. 당시 국가가 공인한 이른바 '합법적 해적 행위', 즉 사략 활동이야말로 하인의 명성을 만든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마탄사스만의 대승, 1,100만 플로린의 전리품

1628년, 하인은 신대륙의 보물, 즉 광산 식민지에서 채굴된 은을 본국으로 운송 중이던 스페인 함대를 공격했습니다. 스페인 함대의 일부는 공격 소식을 미리 접하고 인근 스페인 식민지로 피신했지만, 나머지 함대는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15척의 배가 쿠바 연안의 마탄사스만(Matanzas Bay) 근해에서 하인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하인이 손에 넣은 전리품, 즉 금과 은을 비롯한 각종 보물의 가치는 1,100만 플로린을 훌쩍 넘었습니다. 이는 카리브해에서 거둔 네덜란드 역사상 최대의 승리였습니다. 1629년 로테르담으로 돌아온 하인은 영웅으로 대환영받았고, 그가 가져온 보물은 네덜란드 군대를 8개월간 지원할 수 있는 막대한 재원이 되었습니다.

최후와 남겨진 유산

하인은 최고 해군 지휘관직인 리우테넌트 제독(luitenant-admiraal)에 임명되었지만, 같은 해 됭케르크 해적들과 벌인 수차례의 해전 가운데 하나에서 전사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델프트의 아우데 커크(Oude Kerk, 옛 교회)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를 기리기 위해 암스테르담에는 그의 이름을 딴 터널이 조성되었으며, 한 척의 옛 프리깃함에도 그의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흥미롭게도 20세기의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시인인 피트 하인(Piet Hein)은 바로 그의 직계 후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