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개발한 T-34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남긴 전차로 평가받으며, 85mm 포를 장착한 후기형인 T-34/85는 종전 때까지 연합군 진영의 주력 전차로 활약했습니다.
T-34/85 기본 사양
개요
- 국가: 소련(USSR)
- 유형: 중형전차
- 승무원: 5명
- 무장: ZIS-S-53 85mm L/51 전차포 1문, DT 7.62mm 기관총 2정
- 장갑: 최소 18mm ~ 최대 60mm
제원
- 전장(포신 포함): 7.50m
- 전폭: 2.92m
- 전고: 2.39m
- 전투 중량: 32t
- 접지압: 0.80kg/cm²
- 중량 대 마력비: 16.1hp/t
엔진 및 성능
- 엔진: V-2-34 수랭식 12기통 디젤 엔진, 1,800rpm에서 507마력 출력
- 도로 최고 속도: 시속 50km
- 항속 거리: 300km
- 수직 장애물 통과: 0.79m
- 참호 통과 폭: 2.49m
- 등판 능력: 30도
- 운용 기간: 1940년부터 붉은 군대에 배치, 이후 여러 국가에서 오랫동안 사용
개발의 출발점: BT 전차에서 A-20까지
1936년, 젊은 기술자 미하일 코시킨(M.I. Koshkin)은 하리코프 콤인테른 공장의 설계국장으로 발령받았습니다. 이 설계국은 바퀴와 무한궤도를 겸용하는 혼합식 BT 전차의 현대화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1937년 초, 이 공장은 새로운 혼합식 중형전차 설계 임무를 부여받았고, 그 결과물이 바로 A-20이었습니다. 설계 작업은 같은 해 11월에 완료되었습니다. 45mm 포를 장착한 18톤급 A-20은 급경사로 처리된 경사장갑 덕분에 이른바 '철갑탄 방어형' 전차의 원형이 되었으며, 이 특징은 훗날 T-34에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A-20의 섀시는 일부 엔진 부품의 수정을 제외하면 BT 전차와 거의 동일했습니다. 한편 76.2mm 포를 장착한 파생형은 A-30이라 명명되었습니다.
혼합식의 한계 극복: A-32에서 T-32로
그러나 코시킨은 혼합식 구조가 잘못된 방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군이 BT 전차를 무한궤도 없이 바퀴만으로 운용한 경우는 드물었고, 두 가지 주행 장치를 모두 갖추는 것은 생산 공정을 복잡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중량 증가를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코시킨은 순수 무한궤도식 변형인 A-32(후의 T-32) 제작을 제안했고, 소련 최고군사회의는 시제품 제작을 승인했습니다. 다만 비교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혼합식 안도 완전히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1939년 초 하리코프에서 완성된 A-20과 T-32의 시제품은 같은 해 기갑 관리국에 제출되었고, 관리국은 T-32의 장갑 강화와 더 강력한 무장 채택을 권고했습니다.
T-34의 탄생
코시킨의 팀은 즉각 작업에 착수해 최종 설계안인 T-34를 완성했습니다. 국제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최고군사회의는 1939년 12월 19일, 시제품 완성 이전에 T-34를 육군 기갑부대의 장비로 채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40년 1월 말, 첫 양산형 T-34('T-34 1940년형')가 콤인테른 공장을 떠났습니다.
2월 초, 두 대의 T-34는 코시킨의 직접 감독 아래 하리코프–모스크바–스몰렌스크–키예프–하리코프로 이어지는 장거리 험로 주행 시험을 수행했습니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이 전차는 고위 지휘부에 공식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폐렴에 걸린 코시킨은 입원한 끝에 1940년 9월 2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 조수였던 A.A. 모로조프가 최종 모델의 완성을 맡았습니다. 같은 해 6월, 설계 도면이 확정되면서 T-34는 본격적인 양산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병사들이 '체트베르카(서른넷)'라는 애칭으로 부른 T-34는 뛰어난 경사장갑 설계 덕분에 철갑탄에 대한 저항력을 크게 높였습니다. 76.2mm 장포신 속사포 역시 이 등급 전차에는 혁신적인 무장이었습니다.
BT-7M에 이미 탑재된 바 있는 507마력 V-2 디젤 엔진은 화재 위험을 낮추는 동시에 항속 거리를 크게 늘려주었습니다. 개량된 크리스티 현가장치는 험로에서도 고속 주행을 가능하게 했고, 넓은 무한궤도는 접지압을 최소한으로 줄였습니다. 전반적인 설계는 신속한 생산과 야전에서의 정비·수리 용이성까지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코시킨의 T-34는 미첼의 스핏파이어에 필적하는 소련의 걸작이라 할 만합니다. 두 제작자 모두 조국에 승리를 가져올 결정적 무기를 완성하려다 일터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서, 이 유사성은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1940년 말까지 115대의 T-34가 완성되었습니다.
실전 데뷔와 독일군의 충격
일부 T-34는 핀란드 전선에서 실전 시험을 받기 위해 파견되었지만, 도착이 늦어 작전에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1941년 6월 독일의 침공 당시 이미 1,225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모스크바 전투가 시작될 무렵에는 1,853대가 전투 부대에 인도되었으나 상당수가 이미 손실된 상태였습니다.
T-34는 1941년 6월 22일 벨라루스 그로드노 근교에서 처녀전을 치렀습니다. 독일군에게 이는 완전한 충격이었고, 독일군은 이 전차를 최대한 경계하며 상대해야 했습니다. 독일은 T-34의 복제를 검토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결국 T-34의 설계에서 큰 영향을 받은 유명한 '판터' 전차를 개발하게 됩니다.
전차 공장들이 동부로 철수한 이후에도 T-34의 생산은 우랄 기계 제작 공장(우랄마시)을 비롯한 여러 보조 공장에서 계속 이어졌습니다.
T-34/85로의 진화
초기형 T-34는 압연 강판을 용접해 만든 포탑에 76.2mm 1939년형 L-11 포를 장착했습니다. 생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곧 새로운 주조식 포탑으로 교체되었습니다. 1941년 중반에는 포신이 더 길고 포구 초속이 높은 1941년형 F-34 포가 채택되었습니다.
양산 과정에서 T-34에는 수많은 개량이 가해졌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1943년 가을 채택된 ZIS-S-53 85mm 전차포였습니다. 이 포를 장착하고 85mm 포탄 55발과 7.62mm 탄약 2,394발을 탑재한 이 전차는 T-34/85로 명명되어 1943년 12월 15일부터 양산에 들어갔습니다. 같은 해 말까지 283대가 생산되었고, 이듬해에는 11,000대 이상이 추가 생산되었습니다.
T-34/85의 생산은 1950년대 중반 차세대 전차인 T-54가 채택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다른 여러 나라 군대에서는 1960년대 중반까지 운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