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탈라베라 전투: 나폴레옹의 스페인 원정을 뒤흔든 피의 격전

탈라베라 전투: 나폴레옹의 스페인 원정을 뒤흔든 피의 격전
탈라베라 전투(Battle of Talavera)는 1809년 7월 27일부터 28일까지 스페인 톨레도 주의 탈라베라 데 라 레이나(Talavera de la Reina)에서 벌어진 전투로, 나폴레옹의 스페인 원정, 즉 반도 전쟁 중 가장 피비린내 나는 격전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전투 이전의 정세

영국의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 장군은 프랑스 술트(Soult) 원수의 군대를 포르투갈에서 몰아낸 뒤, 약 2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스페인으로 진격하여 쿠에스타(Cuesta) 장군이 지휘하는 3만 3천 명의 스페인군과 합류했습니다. 연합군은 타구스 강 유역을 따라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약 115km 떨어진 탈라베라 데 라 레이나로 진군했습니다.

그곳에서 연합군은 스페인 국왕 조제프 보나파르트(Joseph Bonaparte)가 지휘하고 주르당(Jourdan) 원수가 참모총장으로 보좌하는 프랑스군과 마주했습니다. 프랑스군은 빅토르(Victor) 원수와 세바스티아니(Sébastiani) 장군이 이끄는 두 개 군단, 총 5만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연합군에는 선봉에 선 빅토르 군단을 탈라베라에서 격멸할 절호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쿠에스타는 일요일에 전투를 벌이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고, 이로 인해 프랑스군은 퇴각할 시간을 벌게 됩니다.

전투의 경과

결정적 기회를 놓친 다음 날인 7월 26일, 쿠에스타는 증원을 받아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직접 지휘하게 된 프랑스군을 추격했지만 교전에서 패배했습니다. 스페인군은 황급히 후퇴했고, 이들을 엄호하기 위해 영국군 여러 대대가 투입되어야 했습니다. 웰즐리 본인조차 프랑스 기병에게 붙잡힐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밤이 되자 프랑스 용기병(dragoon) 순찰대가 스페인 보병 진영 근처를 배회했습니다. 이에 놀란 스페인 병사 만여 명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는데, 이는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손꼽히는 대규모 일제 사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쏜 총성에 오히려 공포에 질린 스페인군은 우왕좌왕하다 흩어져 버렸고, 다음 날 전투에서는 사실상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7월 27일 오후 3시, 프랑스군이 알베르체(Alberche) 강을 도하했습니다. 오후 5시, 프랑스군은 스페인군의 우익과 영국군의 좌익을 공격했습니다. 한 언덕을 두고 수차례 빼앗기고 되찾기를 반복한 끝에, 마침내 영국군이 그 언덕을 확고히 장악하게 됩니다.

7월 28일 새벽, 언덕을 되찾으려는 프랑스군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으나 격퇴당했습니다. 포격은 정오까지 계속되었고, 이후 두 시간 동안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오후 2시에는 격렬한 포격이 다시 시작되었고, 이어 보병과 기병 간의 소규모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오후 5시 30분경부터 6시경까지 벌어진 대규모 교전에서 프랑스군은 밀려났으며, 포격은 밤까지 이어졌습니다.

다음 날 새벽, 프랑스군은 부상자들과 포병 여단 두 개를 전장에 남긴 채 철수했습니다.

전투의 결과와 평가

이 치열한 전투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영국군이었습니다. 영국군은 6,200명을 잃었고, 스페인군의 손실은 약 1,000명에 그쳤습니다. 프랑스군은 7,390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안타깝게도 마른 풀이 불타오르면서 양측의 많은 부상자들이 산 채로 불타 죽는 비극도 있었습니다.

술트 원수의 진격군과의 즉각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웰즐리는 리스본으로 후퇴하면서 수천 명의 부상자를 쿠에스타의 보호 아래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군은 곧 그들을 버렸고, 부상자들은 결국 프랑스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 사건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국과 스페인 간의 신뢰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더욱이 스페인 측은 영국군이 스페인에 입국할 때 '동맹군'에게 식량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국군에 물자를 판매하는 마을은 약탈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포르투갈로 강제 후퇴를 계속해야 했던 영국군은 이후 다시는 스페인을 신뢰하지 않았고, 그때부터 포르투갈 왕국이 영국의 최우선 동맹국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전투의 공로로 아서 웰즐리는 '탈라베라의 웰링턴 자작(Viscount Wellington of Talavera)' 작위를 받으며, 훗날 나폴레옹을 무너뜨리는 명장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