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리볼리 전투(1797): 나폴레옹이 만토바 함락의 길을 연 결정적 승리

리볼리 전투(1797): 나폴레옹이 만토바 함락의 길을 연 결정적 승리

리볼리 전투는 1797년 1월 14일부터 15일까지 이탈리아 북부 베로네 인근 리볼리베로네세 일대에서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군이 맞선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만토바 공방전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투 가운데 하나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지휘하는 프랑스 이탈리아군과 포위된 도시를 구원하기 위해 파견된 오스트리아군 간의 대결이었습니다.

전투 배경

아르콜레 전투 이후,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알빈치(Josef Alvinczy) 장군은 자신이 이끈 19,000명의 병력이 13,000명 남짓한 프랑스군보다 훨씬 많았음에도 패배했다는 점에서 보나파르트의 승리가 어느 정도 운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해 포위된 만토바를 구출하겠다는 결심으로 다시 공세에 나섰습니다.

한편 보나파르트는 만토바, 리볼리, 베로네 일대가 모두 3일 행군 거리 안에 들어오도록 병력을 분산 배치해, 어느 방향에서 위협이 닥쳐도 신속하게 집결·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전투 경과

1797년 1월 12일, 알빈치는 약 28,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바르텔레미 주베르(Barthélemy Joubert) 장군이 지휘하는 10,000명의 프랑스군을 공격했습니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주베르는 리볼리 고원으로 후퇴했고, 1월 14일 새벽 2시에 루이알렉상드 베르티에와 보나파르트가 그와 합류하며 전세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 오스트리아군은 병력을 분산시키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보나파르트는 주베르에게 산마르코 예배당을 탈환하라고 명령했고, 주베르는 새벽 4시에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그러나 주베르 군단은 곧 궤멸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전황을 뒤집은 것은 오전 9시였습니다. 강행군 12시간 끝에 앙드레 마세나(André Masséna) 사단이 전장에 도착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습니다. 오전 11시 프랑스군이 다시 밀리는 듯한 순간, 페터 콰스다노비치(Peter Quasdanovich) 휘하의 오스트리아 사단이 고원에 도착했지만, 오스트리아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1월 15일에는 주베르가 공격을 재개해 패주하는 적을 끝까지 추격했습니다.

전투 결과

리볼리에서의 결정적 승리로 보나파르트는 만토바 공방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만토바는 이듬해 1797년 2월 2일 마침내 항복했습니다. 이로써 프랑스의 이탈리아 지배는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일화: 이틀 동안 148km를 달려 전장에 도착한 마세나를 나폴레옹은 "승리의 총애아(l'enfant chéri de la victoire)"라 불렀으며, 그의 부대가 카이사르의 군단보다 더 훌륭하다고 극찬했습니다.

문학 속의 리볼리 전투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소설 『시골 의사(Le Médecin de campagne)』에서는 제대한 보병 출신 인물 고글라(Goguelat)가 이탈리아 원정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당시 전투들을 하나씩 열거합니다.

"우리 삼만 명의 맨발 병사가 팔만 명의 독일군과 싸웠지. 잘생기고 멋진 차림새의 놈들이라 지금도 눈앞에 선한 것 같아. 그래도 아직 보나파르트로 불리던 나폴레옹이 우리 뱃속에 무언가를 불어넣은 거야. 그리하여 우리는 밤에도 걷고 낮에도 걸었어. 몬테노테에서 놈들을 두들겨 패고, 리볼리, 로디, 아르콜레, 밀레시모로 달려가 또 두들겨 팼지. 그리고 한 놈도 놓아주지 않았어. 병사란 승리하는 맛을 알게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