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타란토 공작 에티엔 마크도날드 – 나폴레옹 제국의 충신 원수

1765년 11월 17일 프랑스 스당(Sedan)에서 태어나 1840년 9월 25일 루아르 강변 지앙(Gien) 인근 쿠르셀 성에서 별세한 에티엔 자크 조제프 알렉상드르 마크도날드(Étienne Jacques Joseph Alexandre Macdonald)는 1809년 프랑스 제국 원수에 임명되었으며, 타란토 공작(Duke of Taranto) 칭호를 받은 군인이었다.

타란토 공작 에티엔 마크도날드 – 나폴레옹 제국의 충신 원수
타란토 공작 에티엔 자크 조제프 알렉상드르 마크도날드

출생과 가문

마크도날드는 헤브리데스 제도 사우스위스트 섬 출신 스코틀랜드 가문의 후손으로, 프랑스 스당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닐 맥이첸(Neil MacEachen, 훗날 맥도널드로 개명)은 하우베그 출신으로,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왕자의 프랑스 탈출을 도운 인물이었다. 1767년 닐은 1752년부터 생세르에 망명해 살아온 열다섯 명의 자코바이트들과 합류했고, 알렉상드르를 포함한 가족과 함께 그곳에 정착했다.

마크도날드는 오길비 연대에서 복무했으며, 1784년에는 네덜란드에서 딜런 아일랜드 연대에 처음 입대했고, 1787년에는 제87보병연대의 사관후보생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기

주마프(Jemmapes) 전투에서 그는 옛 피카르디 연대의 대령으로 임명되었다. 주마프 전투 이후 대위로 진급했고, 이내 빠른 속도로 장군 계급까지 올라갔다. 1795년에는 피셰그뤼가 지휘하는 북부군 소속으로 요크 공작이 이끄는 영국군을 추격하며 얼어붙은 강을 건넜고, 얼음에 갇힌 네덜란드 함대를 기병대와 함께 나포하는 눈부신 전과를 세웠다.

라인 방면군과 이탈리아 방면군에서 복무한 뒤에는 로마 및 교황령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1799년 프랑스군이 로마에서 철수할 때에는 연합군을 상대로 영광스러운 전역을 수행했다.

사흘에 걸쳐 벌어진 트레비아(Trebbia) 전투에서는 3만 5천 명의 병력으로 5만 규모의 적군을 상대하며 여러 차례 부상을 입었음에도 버텨냈고, 끝내 모로 장군과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집정정부 시대와 제1제국

1799년 브뤼메르 18일 쿠데타 당일 그는 베르사유의 지휘관으로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강력히 지원했다. 마렝고 전투와 그리종(Grisons) 전역 이후, 마크도날드는 1803년까지 덴마크 주재 전권공사로 파견되었다. 귀국 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대장교(Grand Officer)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변호했던 모로 장군 사건에 연루되어 실각했고, 1809년에야 비로소 이탈리아에서 사단 지휘관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바그람(Wagram) 전투에서 200문의 대포로 보호받던 적군 중앙을 돌파한 공로로 그는 원수로 임명되었다.

1810년 파리로 돌아온 그는 타란토 공작에 봉해졌고, 스페인으로 건너가 군단 지휘를 맡았다. 1812년에는 러시아 원정에서 제10군단을 지휘했다. 1813년에는 뤼첸(Lützen), 바우첸(Bautzen), 라이프치히(Leipzig) 전투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라이프치히에서는 폰야토프스키 공작이 익사한 엘스터 강을 수영으로 건넜으며, 10월 30일의 하노(Hanau) 전투 또한 목격했다. 1814년 전역에서는 프랑스군 좌익을 지휘했고, 퐁텐블로에서 나폴레옹의 퇴위를 크게 주도하며 그 현장에 참석했다.

퐁텐블로 퇴위 이후 그는 1814년 6월 4일 귀족 작위를 수락했다. 1815년 3월 19일 밤부터 20일로 넘어가는 밤에는 루이 18세와 함께 파리를 떠나 멩(Menin)까지 배동한 뒤 파리로 되돌아왔다. 그는 나폴레옹 측이 내민 어떤 직책도 거절하고, 국민방위군에서 일개 척탄병으로 복무했다.

워털루 전투 이후 그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대총장(Grand Chancellor)에 임명되었다.

부르봉 왕조가 복귀한 뒤 타란토 공작에게는 루아르 방면군 해산 임무가 맡겨졌다. 1821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대총장으로 재임명되어 1831년까지 그 직위를 유지했다.

1840년 9월 25일, 지앙 인근 쿠르셀 성에서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15살 나이의 아들을 남겼다.

나폴레옹이 성헬레나에서 남긴 평가는, 특히 그가 불만을 품을 만한 인물들을 두고 한 말일수록 높은 신뢰성을 지닌다.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 "마크도날드는 대단히 충성심 깊은 사람이었다."

군사 경력

  • 1793년 3월 8일: 제26전투반여단 여단장
  • 1793년 8월 26일: 준장
  • 1794년 11월 28일: 사단장(소장)
  • 1809년 7월 12일: 프랑스 제국 원수로 승격

칭호, 훈장 및 포상

  • 1803년 10월 16일: 레지옹 도뇌르 훈장 기사(Knight)
  • 1804년 6월 14일: 레지옹 도뇌르 훈장 대장교(Grand Officer)
  • 1809년 8월 14일: 레지옹 도뇌르 훈장 대십자장(Grand Eagle)
  • 1809년 12월 9일: 타란토 공작 책봉
  • 1815년 7월 2일: 레지옹 도뇌르 훈장 대총장
타란토 공작 에티엔 마크도날드 – 나폴레옹 제국의 충신 원수
마크도날드의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