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프리앙(Louis Friant, 1758년 9월 18일 몰랑쿠르 출생 ~ 1829년 6월 24일 발두아즈주 세랭쿠르 사망)은 프랑스 혁명 전쟁부터 나폴레옹 전쟁 말기까지 수십 년간 전장을 누빈 베테랑 장군이다.
초기 군사 경력
1781년 프랑스 왕실근위대(French Guards)에 입대한 프리앙은 1787년 근위대를 떠났지만,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파리 국민방위군에 합류하며 다시 무기를 들었다. 이후 모젤 방면군으로 파견되어 소속 아스날 대대가 그를 중령으로 선출하면서 본격적인 지휘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장군으로의 승진과 이집트 원정
1794년 7월에는 셰레(Schérer) 장군의 참모총장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8월 준장으로 승진했다. 1795년 6월에는 룩셈부르크 총독으로 임명되어 군사적 역량뿐 아니라 행정 능력까지 인정받았다.
1797년 이탈리아 방면군으로 전속된 그는 보나파르트를 따라 이집트 원정에 동행하여 모든 주요 전투에 참전했으며, 1799년에는 사단장(général de division)으로 승진하는 영예를 안았다.
제국 전역의 영웅
1801년 귀국한 프리앙은 1805년 오스터리츠 전투에서 세 마리의 애마가 차례로 그의 아래에서 쓰러질 정도로 최전선에서 지휘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아우어슈테트, 골리민 전투에서도 공을 세웠고, 에일라우 전투에서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1808년에는 제국 백작 작위를 받았다.
1809년에는 4월 22일 에크뮐 전투에 참전했고, 바그람 전투에서는 노이지들(Neusiedl) 탑을 강습하던 중 다시 부상당했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는 8월 17일 스몰렌스크 전투와 보로디노(모스크바 강) 전투에서 연달아 부상을 입었음에도 끝까지 부대를 이끌었다.
근위노병대의 지휘관과 말년
1813년 황제의 시종장(chambellan)에 임명된 그는 드레스덴, 하나우 등 독일 전역의 대규모 전투에 참여했다. 이후 근위노병대(Vieille Garde) 제1보병사단장으로서 프랑스 전역의 주요 전투를 지휘했으며, 백일천하(Hundred Days) 기간에는 근위 척탄보병 연대를 지휘했다.
워털루 전투에서 마지막 부상을 입은 그는 왕정복고 이후 루이 18세에 의해 은퇴 처리되었다. 그러나 그의 헌신과 공헌은 잊히지 않아, 프리앙의 이름은 파리 개선문에 영원히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