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카족(Gurkhas)은 16세기 무슬림의 침입을 피해 인도 라자스탄에서 네팔로 이주한 라지푸트 카시 부족의 후예들입니다. 그들의 언어인 구르칼리어(Gurkhali)는 힌디어와 가까운 인도유럽어족 방언으로, 네팔어(Nepali)라는 이름으로 네팔의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전설과 역사
구르카족의 기원
전설에 따르면, 8세기 메와르 왕조의 창시자 바파 라왈(Bappa Rawal, 본명 칼브호지) 왕자가 라자스탄의 정글에서 사냥 중 깊은 명상에 잠긴 성자 구루 고르카나트(Guru Gorkhanath, 실제로는 10~14세기 철학자 고락나트)를 발견했습니다. 왕자는 성자를 보호하며 명상이 끝날 때까지 곁을 지켰고, 이에 감동한 성자는 그에게 쿠크리 단검을 주며 "너와 네 부하들은 용맹함으로 세상에 알려질 것"이라 예언하고 '구르카(고르카나트의 제자)'라는 이름을 내렸습니다. 성자는 그들에게 아프가니스탄(당시 칸다하르)을 점령하려던 무슬림 침략자들을 막는 임무를 맡겼고, 이들은 8세기까지 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일부 전설은 바파 라왈이 이후 이란과 이라크를 정복한 뒤 메루 산 기슭에서 은둔 수행자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합니다.
네팔 건국과 확장
1559년, 바파 라왈의 후손인 구르카족 일부가 드라비야 샤(Dravya Shah)의 지휘로 동쪽으로 이주해 현재 네팔 영토인 카트만두 북서쪽 80km 지점에 작은 왕국을 세우고, 수호성인의 이름을 따 '고르카(Gorkha)'라 명명했습니다. 1769년 마하라자 프리트비 나라얀 샤(Prithvi Narayan Shah, 1775년까지 재위)의 지휘 아래 말라 왕조가 통치하던 네팔 대부분을 정복하고 카트만두에 입성해 힌두교를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1788년과 1791년 구르카족은 티베트를 침공해 시가체의 타실훈포 사원을 약탈했고, 1792년 티베트는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구르카족과 영국의 정복
1814년부터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구르카족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이해관계와 충돌해 영구르카 전쟁(1814~1816)이 발발했습니다. 패배한 구르카족은 1815년 11월 사우갈리 조약(Treaty of Sugauli)을 체결했으나 이듬해 마크완푸르 전투에서 다시 격파당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영국군은 구르카족의 용맹함에 깊은 인상을 받아, 당시 네팔 총리 정 바하두르 라나(Jung Bahadur Rana)의 허락을 얻어 구르카 연대를 용병으로 정규 편성해 동인도 회사군에 편입시켰습니다.

구르카족은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스스로를 원조 구르카의 후예로 여기는 타쿠르/라지푸트 구르카는 장교로만 복무하려 했고, 티베토-몽골계 구르카는 사병으로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타쿠르/라지푸트 출신인 구르카 라이플의 나렌드라 비르 싱(Narendra Bir Singh) 장군은 마운트배튼의 부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인도 독립 후 타쿠르/라지푸트 구르카는 영국군 복무를 거부했으나 티베토-몽골계는 계속 복무했습니다.
국제법상 현재 영국군에 편입된 구르카족은 용병이 아닌 정규군으로, 구르카 여단(Brigade of Gurkhas)을 편성해 영국 병사의 모든 법규를 적용받습니다. 인도군 복무 구르카에게도 동등한 체계가 적용됩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군 시절
구르카족은 1817년 핀다리 전쟁, 1826년 부르트포르 전투, 제1·2차 앵글로-시크 전쟁(1845~1846, 1848~1849)에서 동인도 회사 계약병으로 복무했습니다.
1857년 세포이 항쟁 때 구르카족은 영국 편에서 싸웠고, 항쟁 진압 후 편성된 영국 정규군에 편입되었습니다. 제2 구르카 라이플(시르무어 라이플)은 힌두 라오의 집을 3개월간 사수하며 490명 중 327명이 전사하는 희생을 치렀습니다. 함께 싸운 제60 라이플(훗날 왕립 그린 재킷) 병사들은 이들의 공로를 기려 제2 구르카에게 자신들의 상징인 녹색 소총병 제복을 수여하고 '퓨질리어(Fusilier, 소총병)' 칭호를 부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영국령 인도군 시절
세포이 항쟁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구르카 연대는 버마, 아프가니스탄, 인도 북동·북서 변경, 몰타(러시아-터키 전쟁 1877~1878), 키프로스, 말라야, 중국(의화단 운동 1900), 티베트(프랜시스 영허즈번드 원정 1903) 등지에서 복무했습니다.
1901~1906년 구르카 연대는 제1~제11 구르카 라이플로 재편성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엔 10만 명이 참전해 프랑스(루스, 기브니, 뇌브샤펠, 이프르),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수에즈 운하, 팔레스타인(튀르크군 저지), 갈리폴리, 살로니카 전선에서 싸웠으며, 로렌스 장군 휘하에도 파견되었습니다.
전간기에는 제3차 아프간 전쟁(1919)과 와지리스탄 등 북서 변경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1920년부터 구르카도 인도 국왕 위임 장교(King's Commissioned Indian Officer)가 될 수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드물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네팔 왕실은 20개 대대 추가 모병을 허가해 총 40개 대대로 증강했습니다. 구르카족은 시리아,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그리스, 싱가포르와 버마 정글의 일본군 상대로 싸웠으며, 제1 구르카 라이플 제4대대는 친디트(Chindits) 특수부대의 중핵이 되었습니다.
1800~1946년 구르카 부대 일람
- 제1 구르카 연대 (말라운 연대, 1815년 창설, 1947년 인도군 편입)
- 제2 구르카 연대 (시르무어 라이플, 1815년 창설, 1948년 영국군 편입)
- 제3 구르카 연대 (알렉산드라 여왕 소유, 1815년 창설, 1947년 인도군 편입)
- 제4 구르카 연대 (웨일스 공 소유, 1857년 창설, 1947년 인도군 편입)
- 제5 구르카 연대 (변경군, 1858년 창설, 1947년 인도군 편입)
- 제6 구르카 연대 (1959년 엘리자베스 여왕 제6 구르카 연대로 개명, 커틀랙 군단 제42 구르카 연대에서 유래, 1817년 창설, 1948년 영국군 편입)
- 제7 구르카 연대 (1959년 에든버러 공작 제7 구르카 연대로 개명, 1902년 창설, 1948년 영국군 편입)
- 제8 구르카 연대 (제16 지방대대 실렛 제44 구르카 연대에서 유래, 1824년 창설, 1903년 재편, 1947년 인도군 편입)
- 제9 구르카 연대 (1817년 창설, 1947년 인도군 편입)
- 제10 구르카 연대 (메리 공주 소유, 1890년 창설, 1948년 영국군 편입)
- 제11 구르카 연대 (1918~1922, 1947년 인도 독립 후 재창설)
- 제14, 25, 26, 29, 38, 56, 710 구르카 연대 (모두 1942~1946년 한시 운용)
- 제42, 44 구르카 연대 (각각 제6, 제8 연대와 연계)
인도 독립(1947)과 구르카의 진로
1947년 인도 독립(과 분단) 후, 구르카의 거취는 인도·네팔·영국 3국 협정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핵심은 영국군 복무 구르카에게 인도군 잔류 구르카와 동등한 급여 체계와 연금 보장, 생활비·주거 혜택 부여였으나, 귀국 후 연금은 인도군 복무자보다 낮았습니다. 
협정에 따라 6개 연대는 인도군, 4개 연대는 영국군으로 이관되었습니다. 장교들의 실망과 달리 대다수 구르카는 익숙한 환경의 인도군을 택했고, 영국군 이관 4개 연대(8개 대대)는 말라야 배치 등 불확실성 속에 1개 연대(2개 대대)로 축소된 반면 인도군 측은 12개 대대로 증강되었습니다.
1947년 이후 구르카 부대
영국군 구르카
- 제2 구르카 연대 (에드워드 7세 소유, 시르무어 라이플)
- 제6 구르카 연대 (엘리자베스 여왕 소유)
- 제7 구르카 연대 (에든버러 공작 소유)
- 제10 구르카 연대 (메리 공주 소유)
이들은 구르카 여단으로 편성되어 말라야에 주둔하다 홍콩으로 이전, 1997년 홍콩 반환과 함께 아시아를 떠나 영국 본토로 이동했습니다.
인도군 구르카
- 제1 구르카 연대 (조지 5세 소유, 말라운 연대)
- 제3 구르카 연대 (알렉산드라 여왕 소유)
- 제4 구르카 연대 (웨일스 공 소유)
- 제5 구르카 연대
- 제8 구르카 연대
- 제9 구르카 연대
독립 후 '구르카' 표기를 '고르카(Gorkha)'로 변경했고, 제11 고르카 연대가 신설되었습니다. 1950년 인도 공화국 선포와 함께 모든 왕실 칭호가 폐지되었습니다.
현대 구르카의 활약
인도군 부대
제11 고르카 연대 제1대대는 1999년 카르길 분쟁에 참전했습니다. 1999년 제8 고르카 연대 제5대대는 시에라리온 유엔 임무단(PKF) 일원으로 다이아몬드 광산 보호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영국군 부대
말라야 주둔 시절 공병, 통신, 헌병, 수송 부대가 여단에 증편되었습니다. 1962년 제2 구르카 라이플이 영국 티드워스 기지로 이동했고, 1963년 인도네시아 대란 때 구르카 독립 낙하산 중대(나중 코만도화, SAS 협력)가 창설되어 1972년 해산될 때까지 활약했습니다.
이후 홍콩에 재배치되어 문화대혁명 시기 보안 임무 등을 맡았습니다. 1971년 제7 구르카 라이플이 영국 처치 크루컴으로 이동해 최초로 여왕 근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974년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 때 제10 구르카 라이플이 데켈리아 기지 수호를 위해 파견되어 평화유지군으로 잔류했습니다.
1994년 7월 1일 4개 연대가 왕립 구르카 라이플(Royal Gurkha Rifles, RGR) 단일 연대로 통합되었고, 3개 전문 병과(공병, 통신, 수송; 헌병대는 1965년 해산)는 중대급으로 축소되었습니다.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과 함께 여단 규모는 3,400명으로 감축되고 전 부대가 영국 본토로 철수했습니다.
이후 포클랜드 전쟁(제7 구르카 제1대대), 걸프 전쟁, 코소보 나토 작전, 보스니아·동티모르 유엔 PKO, 시에라리온, 이라크 파병 등에 지속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싱가포르 구르카 분견대
싱가포르 경찰 산하 구르카 분견대(Gurkha Contingent, GC)는 1949년 4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중 해산된 시크 부대 대체용으로 영국군 전역 구르카를 모집해 창설되었습니다. 경찰 조직의 핵심 예비대로, 위기 시 중립적 신속대응부대로 투입됩니다. 독립 초기 소요 사태 때 보여준 용기와 자제력, 프로페셔널리즘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주요 시설 경비와 순찰 임무가 늘어나며 대중 노출이 잦아졌습니다. 이전엔 공개 활동이 드물었습니다.
2006년 기준 영국군 구르카 편제
- 왕립 구르카 라이플(RGR): 제1·제2대대
- 여왕 구르카 공병(QGE): 제69 야전중대, 제70 지원중대 (제36 공병연대 예하)
- 여왕 구르카 통신(QGS): 제246, 제250 구르카 통신중대
- 여왕 직할 구르카 군수연대: 제1·제28 수송중대, 제94 보급중대
- 기타: 브레콘 보병학교·캐터릭 보병훈련센터·샌드허스트 사관학교 기동중대, 구르카 여단 훈련대, 캐터릭 어학원, 구르카 군악대
차별과 차이, 그리고 개선
식민지 시절 영국 장교는 국왕 위임을 받았으나 구르카 장교는 총독 위임을 받았습니다. 독립 후 영국군 잔류 구르카 장교는 '여왕 구르카 장교(Queen's Gurkha Officer, QGO)' 또는 '킹 구르카 장교(King's Gurkha Officer, KGO)'로 호칭되어 영국 병사를 지휘할 수 없는 구분이 생겼습니다. 이 구분은 현재 실효성이 없으나 전통으로 남아 계급장에 QGO/KGO 표기를 유지합니다.
영국군에선 내국인이 바로 장교로 임관 가능하나, 구르카는 사병으로 입대해 실적을 쌓은 뒤 부대 추천으로 장교가 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3국 협정에 따른 구르카와 가족 처우, 특히 영국 병사와의 임금 격차는 영국 내 오랜 논쟁거리였습니다. 거주권도 전역 후 자동 부여되지 않았으나, 2005년 동일임금제가 도입되고 전역 후 거주허가 취득이 용이해졌습니다.
훈장과 상징
구르카 부대 병사들은 빅토리아 십자훈장(Victoria Cross) 13개를 수상했습니다(람바하두르 림부 제외 전원 인도군 시절 수상). 영국인 장교 13명도 구르카 부대 복무 중 동 훈장을 받았습니다. 독립 후 인도군 구르카는 파람 비르 차크라(Param Vir Chakra) 3개를 수상했습니다.
전통 무기인 굽은 대도 쿠크리(Kukri)로도 유명합니다. 전 구르카는 민족과 무관하게 네팔어(인도유럽어족)를 구사하며, 영국 장교는 캐터릭 영국-네팔어 학교에서 기초 교육을 이수합니다.
1980년대 중반 서벵골의 네팔어 화자 그룹이 '고르칼랜드 민족해방전선(GNLF)'을 결성해 분리독립을 시도했고, 1988년 '다즐링 고르카 고등평의회' 구성으로 자치권을 획득했습니다.
구르카 모집
현재 영국군 복무 구르카는 인도-티베토-몽골계와 아리아계로 구성됩니다. 인도-티베토-몽골계는 구룽(Gurung), 마가르(Magar), 타망(Tamang), 카사(Khasa), 키란티(Kiranti) 부족 출신이 많으며 티베트 불교나 샤머니즘을 믿습니다.
선발 시험은 네팔 현지에서 연 1회 실시됩니다. 합격자 중 230명은 영국군, 77명은 싱가포르 경찰 구르카 분견대로 배정되며, 변동 인원이 인도군으로 모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