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장 라프 백작(Jean Rapp) – 나폴레옹을 호위한 알자스의 용장

장 라프 백작(Jean Rapp, Comte)

1771년 4월 27일 프랑스 콜마르(Colmar) 출생 ~ 1821년 11월 8일 바덴바덴 인근 라인빌러(Rheinwiller) 사망

장 라프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시대를 관통한 프랑스 제국의 장군이자 백작으로, 황제 나폴레옹의 가장 신뢰받는 부관 중 한 명이었다.

목사의 길을 버리고 군대로

라프는 태어날 때부터 목사가 되도록 정해진 운명이었지만, 이 길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격정적인 성격의 거구 청년이었던 그는 1788년 3월 세벤느(Cévennes) 사냥병 부대에 입대하며 군인의 삶을 시작했다. 1794년 4월 소위로 선출된 그은 두려움 없는 용맹함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전투에서 여러 차례 부상을 입었다.

데사이의 부관, 이집트 원정까지

1796년 말 데사이(Desaix) 장군의 부관이 되어 대위로 임명된 라프는 데사이를 따라 이집트 원정에 참전했다. 1798년 10월 7일 세디만(Sediman) 전투에서 적군 포병대를 탈취하는 대공을 세워 기병대장(chef d'escadron)으로 승진했다.

나폴레옹의 최측근

보나파르트에 의해 여단장(chef de brigade)으로 임명된 라프는 데사이와 함께 이집트를 떠났고, 1800년 6월 14일 마렝고(Marengo) 전투에서 데사이의 최후를 직접 지켜보았다. 이후 제1집정관 보나파르트의 부관이 되었으며, 1814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그동안 방데(Vendée), 스위스, 벨기에 등지에서 수많은 특별 임무를 수행했다.

오스트리츠부터 제국 백작까지

1803년 준장으로 승진한 라프는 오스트리츠(Austerlitz) 전투에서 맘루크 기병대를 이끌고 돌격하여 러시아 제국 근위기병대를 격파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1804년 성탄절 무렵에는 사단장(général de division)으로 승진했으며, 예나(Jena) 전투에 참전하고 1806년 12월 26일 골리민(Golymin) 전투에서 왼팔에 총탄을 맞아 절단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기도 했다.

톈(Thorn) 총독과 단치히(Dantzig) 총독을 역임한 그는 1809년 3월 제국 백작(comte de l'Empire)에 서임되었다. 에슬링(Essling) 전투에서는 근위 저격병들을 직접 이끌고 전세를 만회하는 활약을 펼쳤다.

러시아 원정과 단치히 공방전

라프는 황제를 따라 러시아 원정에 참전하여 모스크바 강(Moskva) 전투에서 네 발의 총탄을 맞았고, 베레지나(Berezina) 강에서 또다시 부상을 입었다. 1813년 1월 12일 단치히에 들어가 농성에 나섰으며, 같은 해 11월 29일에야 항복했다.

백일천하와 말년

백일천하(Hundred Days) 동안 나폴레옹에게 재합류한 라프는 오랭주(Haut-Rhin) 대표로 입법 의회에 선출되었고,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알자스를 방어하는 데 힘썼다. 루이 18세는 1819년 그를 프랑스 귀족원 의원(pair de France)으로 임명했고, 1820년에는 수석 시종장과 복식관장에 임명했다.

그는 나폴레옹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와 매우 유사한 병, 즉 유문부 경화암(scirrhus)으로 세상을 떠났다. 라프의 이름은 오늘날 파리 개선문(Arc de Triomphe)에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