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프 보나파르트(Joseph Bonaparte, 1768년 1월 7일 코르트 출생 ~ 1844년 7월 28일 피렌체 사망)는 변호사, 외교관, 군인으로서 나폴리 국왕을 거쳐 스페인 국왕에 올랐으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맏형이다.
초기 생애와 결혼
본래 법조인의 길을 걷도록 정해져 있었으나, 동생 나폴레옹의 급격한 부상과 함께 공적인 무대로 불려 들어가게 되었다. 1794년에는 마르세유 상인의 딸 쥘리 클라리(1771~1845)와 결혼하여 두 딸 제나이드 보나파르트(1801~1854)와 샤를로트 보나파르트(1802~1839)를 두었다.
외교관으로서의 경력
1796년 코르시카 대표로 오백인 평의회 의원에 선출되었고, 이듬해인 1797년에는 로마 주재 대사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부관이었던 뒤포 장군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로마를 떠났다. 이후 1801년 뤼네빌 조약과 1802년 아미앵 조약 체결에 서명하는 등 외교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동생이 황제로 즉위하자 제국 친왕(Prince Impérial) 칭호를 받았고, 1806년에는 나폴리 왕위에 올랐다.
나폴리 국왕 시절
나폴리 국왕으로서 수도회 개혁을 단행하고 사법·교육·재정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정비했다. 백성들에게는 폭넓은 사랑을 받았지만, 귀족들의 지지를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 1808년 동생에 의해 스페인 국왕으로 임명되자, 나폴리 왕위는 매부인 무라에게 넘겨주었다.
스페인 통치와 몰락
스페인에서의 개혁 시도는 나폴리 때만큼 성공적이지 못했고, 그는 두 차례나 수도에서 쫓겨나야 했다. 결국 1813년 빅토리아 전투의 패배 이후 프랑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1814년과 백일천하 기간 동안 제국 중장(Lieutenant général de l'Empire)으로서 제국 원수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으며, 술트나 마세나처럼 뛰어난 인물들조차 그를 따르지 않았다. 사태를 통제하지 못한 채 연합군이 접근하자 파리를 떠나 황후와 함께 블루아로 피신했다. 이로 인해 그는 프랑스군 작전 실패의 주요 책임자 중 한 명으로 꼽히게 되었다.
미국 유배와 말년
동생의 퇴위 이후 1815년부터 1832년까지 미국에서 생활했다. 그는 '쉬르빌리에 백작(Comte de Survilliers)'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농업에 몰두했고, 이후 유럽으로 돌아와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에서 차례로 여생을 보냈다.
인물 평가와 저술
현명하고 선량하며 소박한 삶의 방식을 지닌 인물이었지만, 동생이 그에게 맡긴 높은 자리를 감당할 만큼의 역량은 부족했다. 그는 문학을 깊이 사랑하고 키웠으나, 가문의 영웅에게 바치는 10곡으로 된 시 『나폴레옹』의 저자로 알려진 것은 잘못된 사실이다. 이 시는 실제로 당시 일드프랑스(모리셔스)의 교수였던 위베르루이 로르케가 1822년 그 섬에서 출간한 것이다.
조제프 국왕은 회고록과 서간집을 남겼는데, 알베르 뒤 카스가 1852년부터 1854년까지 파리에서 8절판 10권으로 출간했다. 이 자료들은 제국 시대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빛을 던져주는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