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레티치아 라몰리노 보나파르트(1749년 또는 1750년 8월 24일 아작시오 출생 ~ 1836년 2월 2일 로마 별세)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의 어머니다. 그녀의 인생은 코르시카의 가난한 귀족 가정에서 시작해 유럽 최강 제국의 모친이 되기까지, 격변의 18~19세기 역사를 그대로 관통하는 드라마다.
15세 신부, 열두 자녀의 어머니
1764년 6월 2일, 15세의 어린 나이에 레티치아는 샤를 보나파르트와 결혼했다. 그녀는 남편 사이에서 무려 12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중 8명이 성인으로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1785년 남편 샤를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은 갑작스럽게 극심한 빈곤에 내몰렸다.
혁명의 소용돌이와 끊임없는 피난길
프랑스 혁명은 이미 어려웠던 보나파르트 가문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켰다. 1793년 5월, 파올리 지지자들이 아작시오에 있던 그녀의 집을 불태우자 레티치아는 자녀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해 6월 툴롱으로 피신했다가, 툴롱에서 왕당파 반란이 일어나자 다시 마르세유로 옮겨야 했다.
자식들의 결혼과 파리 정착
피난 생활 중 레티치아는 장남 조제프를 부유한 상인의 딸과 맺어주었고, 딸 엘리자는 무명의 코르시카 장교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나 폴린은 평판이 좋지 않은 스타니슬라스 프레롱과 어울렸고, 나폴레옹은 어머니의 의견조차 묻지 않은 채 파리에서 과부 조제핀 드 보아르네와 결혼해 버렸다.
브뤼메르 18일 쿠데타 이후 레티치아는 이복 동생 조제프 페슈 추기경과 함께 파리에 정착했고, 막내아들의 눈부신 권력 상승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녀를 대관식 그림에 담아냈지만, 정작 본인은 로마에 머무는 중이었기에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된 대관식 현장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마담 메르'로서의 품위와 검소함
1804년 12월 19일 귀국한 레티치아는 동생 루시앙에게서 매입한 브리엔 호텔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마담 메르(Madame Mère, 황제의 어머니)'로 불리며 퐁쉬르센 성과 함께 1808년부터 연금 100만 프랑을 받게 되었지만, 그녀는 한결같이 검소하게 재산을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로마에서의 고독한 말년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레티치아는 페슈와 함께 로마에 정착했다. 백일천하 기간에는 파리로 건너가 막내아들과 마지막으로 재회할 수 있었다. 로마로 돌아온 뒤 그녀는 성헬레나 섬으로 유배된 아들 곁으로 가고 싶다고 탄원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 거동이 불편하고 실명한 채 세상을 떠났으며, 시신은 1851년 고향 아작시오로 옮겨져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