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 보나파르트는 누구인가
엘리사 보나파르트(Élisa Bonaparte, 본명 마리아 안나, 1777년 1월 3일 아작시오 출생 ~ 1820년 8월 7일 빌라 비첸티나 별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여동생으로, 루카와 피옴비노의 공작부인이자 토스카나 대공비였습니다. 겉으로는 남편이 군주였지만, 실제 권력은 언제나 그녀의 손에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과 교육
1777년 1월 3일 코르시카 섬의 아작시오에서 태어난 그녀는 장학금 덕분에 프랑스의 명문 기숙학교인 생시르(St-Cyr)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드물 정도로 체계적인 학문적 소양을 갖추게 된 계기였고, 이후 그녀의 지적인 면모와 문화 후원 활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결혼과 파리 문화계 진출
1797년, 엘리사는 코르시카의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가난했던 펠릭스 바치오키(Félix Baciocchi)와 결혼했습니다. 당시 바치오키는 단순한 대위에 불과한 인물이었고, 그가 더 높은 계급에 오른 것은 훗날 부인의 덕을 크게 입은 일이었습니다.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두었으나 성년까지 살아남은 이는 두 명뿐이었습니다.
결혼 약 2년 후 파리로 거처를 옮긴 그녀는 당대 최고의 문인·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살롱을 꾸렸습니다. 문학과 예술을 깊이 사랑했던 엘리사는 이 시기부터 뛰어난 후원자이자 지성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실질적인 권력자로서의 통치
남편 바치오키는 루카와 피옴비노의 공작으로 즉위했지만, 국정의 실권은 전적으로 엘리사 공작부인이 쥐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행정 개혁, 교육 제도 정비, 예술 진흥 등 적극적인 통치 활동을 펼쳤으며, 1809년에는 토스카나 대공비 칭호까지 추가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1814년 오빠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그녀의 군주 생활도 끝을 맞이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공적인 무대에서 물러나 은거 생활을 했는데, 처음에는 볼로냐로, 이후에는 독일 방면으로 옮겨 다녔고, 마침내 1820년 빌라 비첸티나에서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녀들의 말로
엘리사가 낳은 다섯 자녀 중 셋은 어린 시절에 요절했습니다. 성인까지 살아남은 자녀는 딸 나폴레오네(1806~1869, 카메라타 백작부인)와 아들 프레데리크 나폴레옹(1814~1833) 두 사람뿐이었는데, 아들은 젊은 나이에 낙마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편 남편 바치오키는 1841년까지 생존하여 부인보다 오랫동안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