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이단자" 율리아누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게르만 연합군을 몰살하다

 이단자  율리아누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게르만 연합군을 몰살하다

355년, 서로마 제국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게르만족(알레만니와 프랑크족)이 라인강 국경을 돌파해 갈리아까지 깊숙이 침입한 것이다. 황제 콘스탄티우스는 생존해 있는 몇 안 되는 친척 중 한 명인 사촌 율리아누스, 즉 훗날 교회로부터 '배교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황제에게 상황 수습을 명령했다.

그러나 콘스탄티우스가 율리아누스에게 준 병력은 기병 360명에 불과했다. 일련의 작전 기동 끝에 357년 여름, 율리아누스는 알레만니족과 그들의 동맹인 부르군트족을 상대로 진격했다. 이 전투에 대한 주요 사료는 당대의 역사가, 아마도 그리스인이었던 아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이다. 아미아누스에 따르면 율리아누스는 6시간의 행군 끝에 스트라스부르 남서쪽 약 3km 지점인 오버하우스베르겐 일대에 도착해 병사들에게 먼저 휴식을 취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병사들은 이를 거부하고 즉시 전투에 나서달라고 청원했다.

양측의 병력과 배치

같은 시각, 알레만니족의 왕 크노도마리우스는 소규모 로마군을 목격하고 자신보다 약 세 배에 달하는 병력으로 맞섰다. 율리아누스는 기병 전력 약 3,000명을 두 열로 편성해 우익에 배치했다. 중앙에는 중장보병 4,000명을 놓고 좌우를 경장 부대가 지원하게 했다. 제2열에는 궁수 약 1,000명을 배치해 첫 번째 열을 곡사 화망으로 지원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좌익 전면에는 울창한 숲이 있었는데, 율리아누스는 그곳에 세베루스 장군 휘하의 보병 약 2,000명을 배치했다. 그 자신은 정예 근위기병 200명을 이끌고 진형 중앙에 섰으며, 예비대로 보병 약 3,000명을 추가로 운용했다.

이에 맞선 알레만니족은 로마 좌익을 겨냥해 경보병 약 2,000명을 숲속에 매복시켰다. 주력 보병은 조밀한 대열을 이루며 로마 중앙의 보병을 향해 진격했다. 약 4,000명에 이르는 알레만니 기병은 경보병의 호위를 받으며 로마 기병을 향해 돌격했다. 게르만 기병들은 율리아누스의 중장기병 약 1,000명의 충격을 방어하기 위해 조밀한 대형을 갖췄다.

결전

양군의 준비가 끝나자 알레만니족과 부르군트 동맹군은 왕이 직접 보병 선두에 서서 전투를 지휘해줄 것을 요구했다. 크노도마리우스는 이에 응했지만, 그 순간 그는 지휘관에서 수천 명의 병사 중 한 사람으로 전락해 군대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전투는 율리아누스가 '사기타리우스'(궁기병)를 적 기병에게 풀어 피해와 혼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로마 중장기병이 돌격했다. 그러나 기병을 호위하던 게르만 경보병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 게르만 보병들은 놀랄 만큼 능숙하게 싸우며 로마군의 말들을 공격해 넘어뜨렸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로마 중장기병이 붕괴해 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아군 보병 진형마저 무너뜨릴 위기에 처했으나, 율리아누스의 직접 개입으로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역사가 조시무스에 따르면, 전장 복귀를 거부한 기병 부대 하나에 대해 율리아누스가 여자 옷을 입게 명령했다고 전한다.

남은 로마 기병들은 아군 보병의 측면을 엄호하며 게르만 기병을 제압해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두었다. 그러나 율리아누스가 승기를 확신하던 최대의 무기는 이미 무력화된 상태였다. 이에 고무된 게르만족은 광적인 함성을 지르며 로마 보병을 향해 돌진했다. 로마 보병은 방패 벽을 구축하고, 비처럼 쏟아지는 투사체, 즉 손으로 던지는 추추식 표창 '리프타리아'(작은 창과 큰 화살의 중간 형태), 투창, 화살을 퍼부어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를 본 게르만 정예 전사들은 쐐기 대형을 결성해 다시 공격했다. 그 결과 로마 보병 진선에 돌파구를 내는 데 성공했다. 모든 징후는 율리아누스의 소수 부대가 곧 궤멸할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군은 두 동강이 나서도 분단된 채 끝까지 버텨냈다. 한편 세베루스는 함정을 의심해 숲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인내심을 잃은 숲속의 게르만 병력이 무질서하게 그의 부대를 향해 돌진했다가 오히려 격파되었다. 같은 시각 율리아누스는 중앙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예비대를 투입했다.

게르만족은 첫 번째 로마 진열을 제압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두 번째 진열을 공격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결국 삼면에서 타격을 받은 돌파 부대는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이제 상대를 잃은 세베루스의 병력이 중앙 전투에 합류해 게르만군의 우익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중앙의 돌파구는 봉쇄되었고, 모든 로마 보병이 지휘 체계가 붕괴한 적을 향해 총공격을 개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르만족은 사방 4분의 3이 포위된 형국에 몰렸고, 압도적인 타격을 받으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로마의 경장 부대와 기병들이 그들을 끝까지 추격했다...

 이단자  율리아누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게르만 연합군을 몰살하다

로마 중장기병의 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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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 전투. 양측의 초기 배치.

 이단자  율리아누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게르만 연합군을 몰살하다

게르만족의 공격, 진선 돌파와 로마군의 재정비.

라인강 앞에서 벌어진 참극

게르만족은 전방의 적과 배후의 라인강 사이에 갇혀 참혹한 대학살이 벌어졌다. 수천 명이 살육당했고, 더 많은 병사가 항복했으며, 수많은 이들이 대강을 헤엄쳐 건너려다 익사했다. 아미아누스의 기록에 따르면 게르만족 6,000명이 전사하고, 지도자를 포함해 8,000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2,000명이 익사했다. 반면 로마군의 전사자는 불과 243명이었다. 소수의 병력으로 시작한 율리아누스의 원정은 로마 역사상 가장 일방적인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