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나폴레옹의 세인트헬레나 유배와 최후

세인트헬레나로의 추방

워털루에서 최종 패배한 나폴레옹은 영국에 의해 체포되어 대서양 한가운데에 있는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추방되었다. 처음에는 콕번(Cockburn) 제독이, 이후에는 허드슨 로(Hudson Lowe) 경이 그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다.

라스 카스(Las Cases) 백작, 몽톨롱(Montholon) 장군, 구르고(Gourgaud) 장군 등 소수의 충직한 측근들이 그와 함께 유배길에 올랐다. 나폴레옹은 이 시기를 활용해 후세를 위해 자신의 회고록을 집필하는 데 몰두했으며, 대부분의 내용을 라스 카스에게 구술로 남겼다. 이 기록은 오늘날 『세인트헬레나 회고록』으로 전해지며 나폴레옹 연구의 핵심 사료가 되었다.

롱우드 하우스의 고립된 나날

유배 기간 동안 나폴레옹은 영어 학습에도 도전했다. 당시 세인트헬레나는 아프리카를 우회하여 항해하는 선박들의 중요한 기항지였기 때문에, 섬을 거쳐 가던 여러 방문객들을 만나는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롱우드(Longwood) 하우스에 정착한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허드슨 로 총독이 황제를 어디에서든 항상 감시하라는 엄중한 명령을 내렸고, 이에 나폴레옹은 외출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좁은 거주 공간과 습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갔다.

병세 악화와 마지막 유언

나폴레옹은 서서히 병들어 쇠약해졌다. 그는 유언장에서 마르보(Marbot) 남작 장군에게 "프랑스의 위대함"을 위해 저술 활동을 계속 이어달라고 당부했다.

1821년 4월 하순, 그는 친필로 유언장과 여러 개의 추가 조항(코다실)을 직접 작성했는데, 그 분량은 모두 약 40페이지에 달했다.

전해지는 마지막 말들

나폴레옹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군대, 조제핀(France, armée, Joséphine)"이라는 표현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세인트헬레나 회고록』에는 "머리... 군대... 신이여!"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Gérard de Nerval)은 시 「유배자의 죽음을 애도하며」(À la mort de l'Exilé)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죽어가는 나폴레옹의 마지막 말은 '신이여, 프랑스 민족... 프랑스... 내 아들... 무장한 머리'였다." 이 말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지금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통설에서는 그가 실제로는 "군대의 머리", 즉 총사령관을 지칭하는 말을 했다고 보며, 이는 훨씬 덜 수수께끼 같은 해석이다.

1821년 5월 5일, 황제의 죽음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 토요일 오후 5시 49분,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인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이어져 왔다. 공식적으로 담당 의사들은 위암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이후 시신 검증과 연구 과정에서 비소(砒素) 중독설이라는 또 다른 가설이 제기되며 역사학계의 끊임없는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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