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필드 소총의 후계자를 찾다
영국 육군성(War Department)은 크림 전쟁(1853~1856)에서 드러난 엔필드 1853년형 카빈(구경 14.66mm)의 여러 단점을 보완할 신형 소총 개발 임무를 당대 최고의 기계공학자 조지프 휘트워스(Joseph Whitworth)에게 맡겼습니다.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프로젝트는 영국 소총 설계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육각형 강선과 높은 회전율
휘트워스 소총은 기존 엔필드보다 작은 11mm 구경을 채택했으며, 총열 내부는 원형이 아닌 육각형(hexagonal) 단면으로 정밀하게 가공되었습니다. 이에 맞춰 설계된 길쭉한 탄환은 엔필드 소총보다 훨씬 높은 회전 속도(약 20인치, 즉 508mm 진행당 1회전)를 얻었고, 이는 곧 탄도 안정성과 정확도 향상으로 이어졌습니다.
1859년 시험, 압도적인 우위 확인
1859년에 실시된 비교 시험 결과는 4월 23일자 타임스(The Times) 신문에 보도될 만큼 큰 관심을 모았으며, 휘트워스 소총이 모든 항목에서 엔필드를 앞선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육각형 총열 구조는 발사 후 남는 화약 찌꺼기(파울링)에 취약했고, 가공 비용 역시 엔필드 소총의 무려 네 배에 달했습니다. 결국 영국 정부는 채용을 보류했지만, 프랑스 육군은 이 소총을 받아들여 운용했습니다.
남북전쟁과 '휘트워스 샤프슈터'
정확한 수량은 알 수 없으나, 상당 수의 휘트워스 소총이 미국 남북전쟁 중 남부 연합군에 공급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이 무기를 '휘트워스 샤프슈터(Whitworth Sharpshooter)'라고 불렀습니다. 1864년 스포츠실베이니아 전투에서 북군의 존 세즈윅(John Sedgwick) 장군이 휘트워스 저격수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일화는 이 소총의 위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비적인 첫 발사
1860년, 빅토리아 여왕은 윔블던에서 열린 영국 국가소총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of the United Kingdom) 첫 대회 개막식에서 거치대에 고정된 휘트워스 소총으로 발사하여 366m 밖 과녁의 정중앙을 명중시켰습니다. 이 장면은 당시 이 소총이 지닌 정밀성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상징적 순간이 되었습니다.
제원과 운용 방식
휘트워스 소총은 제작 비용이 매우 높았지만, 최대 1,000m 거리까지 놀라운 정밀도를 자랑했으며 이상적인 교전 거리는 650~800m로 평가되었습니다. 저격수들이 주로 사용한 이 소총은 참호 밖으로 과도하게 노출된 병사와 같은 원거리 표적을 명중시키는 데 탁월한 성능을 발휘했습니다.
조준은 기본 가늠쇠를 사용하거나, 다이옵터(diopter) 조준 장치를 부착해 더욱 정밀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숙련된 사수는 사격 자세에 따라 분당 3~5발을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600m 떨어진 지점까지 탄환이 도달하는 데 약 2초가 걸린다는 점입니다. 이는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 사격(리드)을 계산해야 했음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