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프로이센군 '강철' 보병연대… 독일 엘리트 부대의 규율과 영광

프로이센군  강철  보병연대… 독일 엘리트 부대의 규율과 영광

7년전쟁 기간 프로이센군은 총 49개의 정규 보병연대(머스켓 연대와 퓨질리어 연대)를 운용했습니다. 연대 번호는 창설 순서에 따라 매겨졌으며, 일부 연대는 다른 국가 군대에서 창설된 뒤 프로이센군에 합류한 경우도 있어, 이 경우 프로이센군 입대일을 기준으로 서열이 정해졌습니다.

외국인 용병으로 채워진 부대

보병연대를 구성한 병사 가운데 최소 3분의 1은 외국인이었으며, 주로 프로이센 인근의 소규모 독일 방방곡곡 출신이었습니다. 여기에 프랑스, 스위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심지어 오스만 제국 출신 병사들까지 섞여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은 대체로 신생 퓨질리어 연대에 배치되었고, 사실상 전원이 용병으로만 구성된 연대도 존재했습니다. 놀랍게도 프로이센군 최고위 장교조차 외국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엄격한 규율이 만든 하나의 기계

인종과 출신이 제각각인 이 거대한 군사 조직을 하나로 묶은 연결 고리는 다름 아닌 혹독한 규율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병사들이 적보다 장교를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임무를 위해 죽음까지 감수하는 맹목적인 헌신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으며, 특히 대왕 본인에 대한 충성심은 남달랐습니다.

몰비츠 전투(1741)에서는 한 명의 프랑스 용병이 자기 희생으로 프리드리히의 목숨을 구해냈습니다. 호흐키르히 전투(1758)에서는 오스트리아군의 기습 속에 동료 부대가 철수할 수 있도록 제19연대의 아일랜드 출신 병사들이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우며 희생했습니다. 제19연대 2대대는 마을 교회를 끝까지 사수했고, 탄약이 바닥나자 창을 들고 적진에 돌격하기까지 했습니다!

오직 규율과 강한 부대 정신만이 이 군대를 묶는 끈이었습니다. 당시 훈련된 보병 부대의 진정한 강점은 개인의 무용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의 힘을 하나로 합쳐 집단으로 움직이는 능력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프로이센 보병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연대들과 그들의 활약상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1머스켓 연대 – 최고참 부대의 발자취

제1머스켓 연대는 프로이센군에서 가장 오래된 부대로, 30년전쟁 발발 직전인 1615년에 창설되었습니다. 프리드리히 재위 기간에는 실레시아 전쟁(1740~1745)에 참전했으며, 7년전쟁(1756~1763)이 시작되자 피비린내 나는 승리를 거둔 프라하 전투(1757), 유명한 로스바흐 전투(1757), 로이텐 전투(1757), 프로이센군에게 참재앙이었던 호흐키르히 전투(1758), 그리고 리그니츠(1760), 토르가우(1760), 부커스도르프(1762) 전투까지 주요 전역 대부분을 함께했습니다.

제3머스켓 연대 – 명예를 되찾은 안할트데사우 부대

1655년 창설된 안할트데사우의 제3머스켓 연대 역시 수많은 전투를 치른 명문 부대였습니다. 그러나 드레스덴 전투(1760)에서 연대가 도주하는 치욕을 당했고, 분노한 프리드리히는 병사들의 검을 불명예롭게 회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3주 후인 1760년 8월 15일 리그니츠 전투에서,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로 결심한 병사들은 스스로 오스트리아 기병대에 돌격해 창으로 그들을 완벽히 격퇴했습니다.

이후 프리드리히는 직접 제3연대 병사들을 축하하며 검을 돌려줄 것을 명했습니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용서되었노라. 다만 오늘 이 날만은 예외다." 대왕의 선언에 병사들은 그를 에워싸며 환호했다고 전해집니다.

제13머스켓 연대 – '번개와 우레'의 불운한 명예 지휘관들

'번개와 우레'라 불린 제13머스켓 연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740년부터 1762년 사이 이 연대의 명예 지휘관 네 명이 모두 요절했습니다. 세 명은 전장에서 전사한 프로이센 귀족들이었고, 네 번째는 오를로프 형제와 아내 카타리나 2세에게 암살당한 러시아 황제 표트르 3세였습니다. 그러나 명예 지휘관들의 불운에도 연대의 전투력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왕의 동생 하인리히 공자의 지휘 아래 프라하 전투(1757)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이 연대는 1686년에 창설되었습니다.

근위 제15머스켓 연대와 슈베린 원수의 최후

1688년 창설된 근위 제15머스켓 연대는 1731년부터 프리드리히 본인이 명예 지휘관을 맡았습니다. 제15연대 1대대는 몰비츠 전투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는데, 800명 중 전투가 끝났을 때 일어서 있던 자는 겨우 180명이었습니다. 2대대와 3대대 역시 참전한 모든 전투에서, 특히 로스바흐 전투에서 맹활약했습니다.

제17, 18, 19, 23, 24 머스켓 연대 또한 프로이센 보병을 빛낸 저명한 부대들이었습니다. 특히 제24연대는 명예 지휘관인 용맹한 야전원수 쿠르트 폰 슈베린이 직접 이끌고 프라하 전투에 참전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오스트리아 진지를 돌파하지 못하는 프로이센군에 답답함을 느낀 원수는 제24연대의 군기를 잡고 말을 몰아 최전선으로 달렸으나, 적의 포화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지휘관의 죽음을 복수하며 맹공을 퍼붓고 끝내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퓨질리어 연대의 자랑, 제35·제49연대

퓨질리어 연대 중에서는 제35연대와 제49연대가 돋보였습니다. 제49연대는 공병대 인원들이 합류해 '선견부대 연대'로도 불렸습니다. '천한' 출신이자 '어린' 부대 — 1758년에야 창설됨 — 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대는 콘도르프 전투(1758)와 토르가우 전투(1760)에서 탁월한 전투력을 과시했습니다.